(2007년 7월 7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올바른 삶의 방향 English
말씀: 창11:1-9
>> 1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대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9 ...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
가끔 공원을 지나다보면 한심한 자들을 봅니다. 앞으로 달리나 뒤로 달리나 운동 효과가 차이가 별로 없음에도 굳이 뒤로 달리며 운동하는 자들을 봅니다. 머리 홱 돌리고 뒤로 달리는 것을 보면 정신 상태가 좀 이상해 보이기도 합니다. 뭐 하는 짓인가 모르겠습니다. 뒤로 열심히 걷기 운동하는 자들도 있지요. 스스로는 지혜롭다고 여길지 모르나 사실은 어리석은 자이지요. 또 어떤 자는 평생 손톱이나 머리를 자르지 않고 원시인보다 더 불편한 생을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기네스북에 이름이 오르면 뭐합니까? 누가 빵 한 덩어리 준답니까?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높은 탑을 쌓아 뭐합니까? 그렇다고 끝도 없는 하늘에 도달한답니까? 100m 높이까지 쌓을 때까지는 뭔가 업적을 이룬 것 같고 보람을 느끼겠지만 계속 1000m 2000m 탑을 쌓다가는 탑 쌓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한 민족이 1000년을 걸려 위대한 탑을 10,000m 높이까지 쌓았다고 합시다.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겁니까? 죽어라 10,000m 올라가면 거기서 하나님 만날 수 있답니까? 그 꼭대기에서 농사를 지을 겁니까? 약간 힘들겠지요. 문제는 이렇게 무의미한 업적을 이루려 얼마나 많은 자들이 쓸데없는 데에 생을 허비하겠는가입니다. 여러분, 1000억 달러 들여 우주를 탐색하는 로켓을 만들었다고 합시다. 수천 명의 천재급 박사들이 거기 매달려 10년에 걸쳐 그 사업을 완성했다고 합시다. 결과는? 먼 곳에 있는 우주의 사진 몇 장이겠지요. 참으로 지혜로운 스승이 있다면 그렇게 쓸데없는 데에 자원을 낭비하는 것을 극구 만류하겠지요.
오늘 성경말씀은 노아의 홍수 다음에 태어난 자들의 수가 많아질 때 그들이 망령된 짓을 하려는 것을 하나님께서 만류하신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말입니다.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4절).” 이들이 본격적으로 일을 진행시키자 자비로우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어 땅에 다 흩어지게 하셨고, 그 탑 쌓는 것을 중단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시는 교훈은 ‘쓸데없이 힘들게 위로 올라가려 하지말고 옆으로 넓은 땅으로 흩어져라’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으로는 아마 하늘 높은 곳이 신께서 사시는 곳이었을 겁니다. 그들이 무모하게 구름 위까지 탑을 쌓았다고 합시다. 물론 그곳에는 신께서 계신 하늘나라 같은 것은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내리는 결론은? 아마도 ‘이 세상에 신(神)같은 존재는 없다’일 것입니다. 가뜩이나 미련한 세계관에 사로잡힌 옛날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결정적(?) 증거는 많은 자들을 무신론자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구름보다 훨씬 더 높이 로케트를 타고 올라갔던 소련의 무신론자 우주인이 우주 공간에 가서 대뜸 한다는 소리가 “하나님은 없다!”였습니다. 요즘도 대학 나오고 박사학위도 따고 책 몇 권 읽고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미련한 인간들이 구름 높이까지 탑을 쌓아 올라와서 ‘하나님 없다’라고 주장하여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갖고 살던 자들을 말살시키고, 일부 지도자들이 무신론을 신봉하는 독재국가를 세워 신의 자리에서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할 게 분명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벨탑 건설을 중단시키셨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국가 정체는 무자비한 독재와 인권말살이 있었습니다. 바벨탑의 종교적, 정치적 의미는 어리석은 신(神)부재증명(不在證明) 방식과 이에 따른 인간의 신격화 그리고 비인간적 국가 정체(政體)의 출현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어리석은 논리로 신이 없다고 증명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 그렇게 엉터리 논리로 증명해놓고 얼마나 비인간적인 정부를 만들었습니까? 사람들이 자신들의 어리석은 논리로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고 나서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들을 앉혀놓습니다.
베벨탑의 인간론적 의미는 전술했다시피 무가치한 삶의 목표입니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것에 열중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손톱 안깎고 평생 길러 뭐 하겠다는 겁니까? 뒤로 달리기 세계신기록 세우기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 허비해서 뭐하겠다는 겁니까? 높은 산에 오르다가 얼마나 많은 자들이 귀중한 목숨을 잃습니까? 하늘에 닿도록 탑을 쌓아 뭐하겠다는 겁니까? 잠 안자고 영화 오래 보기 신기록을 세워 뭐 하겠다는 겁니까? 정신나간 인간들 중에는 사람 많이 죽인 기록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강간과 간음 많이 한 기록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합니다. 한꺼번에 남녀가 나체사진 촬영장에 많이 등장하는 세계 신기록을 세워 뭐합니까? 무익하고 악한 것들에 삶의 목표를 세우고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는 자들이 바로 바벨탑을 쌓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자 소리 들으려 돈으로 바벨탑을 쌓아 자랑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유식하다는 소리를 들으려 사람들은 과도하게 지식을 쌓기도 합니다. 거룩한 종교인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고행의 바벨탑을 쌓는 자들도 있고, 유능한 목회자 소리 들으려 교인수 늘리기 바벨탑을 쌓는 자들도 있습니다. 대국(大國) 소리 들으려고 이웃 소수민족들을 강제로 다 합병하여 괴롭히는 나라도 있습니다. 완전히 혼합민족 국가가 아닌 한 한 민족이 한 국가를 세우는 것이 옳습니다. 물론 소수민족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을 지으신 것을 정치적으로 폐하려 하면 안되지요. 그것도 일종의 바벨탑(영토 바벨탑)이지요. 자신의 삶을 좀먹는 인생목표, 자신과 타인에게 무익하고 유해한 인생목표가 바로 바벨탑입니다. 양(量)을 우상화하고, 질(質)의 가치를 양의 가치로 대치(代置)하려는 태도가 바로 바벨탑입니다.
사회학적으로 바벨탑은 언어와 지역의 배타성입니다. 바벨탑을 쌓는 자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같은 지역에 정주(定住)하려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날리고 흩어지지 않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태도가 변질되어 인종차별주의나 민족 우월주의가 되면 하나님 앞에 죄가 됩니다. 우리나라에 지역주의와 학벌주의가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까? 자기 집단을 높이고 다른 집단을 비하하며 억압하고 말살하는 태도가 바로 바벨탑입니다.
비록 인간들이 하나님께 대항하려고 바벨탑을 쌓은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의 행위가 미련하였으므로 당신께서는 인간들을 다른 방향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인간 세계에 친히 들어오셨습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7절).” 여기서 우리라고 한 것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들이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저(Z^_stevision)의 글 “창조주 하나님”에서 밝혔듯이 하나님의 존재의 구성 요소에는 시간이나 공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공에 자신의 존재를 두실 수 있으시지만 시공이 없더라도 그분께서는 자신의 존재 차원에 스스로 계십니다. 공간을 3차원, 시공을 4차원이라 합니다. 물건은 공간 안에 존재하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차원(Godself-dimension)에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공간에 납시지 않으신다면 무한한 공간 그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공간에 머무시고자 하신다면 무한한 공간 그 어디에도 동시에 계실 수 있으십니다. 여러분, 인간이 탑 몇 미터 높이로 세워 그곳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주 끝에 가도 거기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간에 납시시고, 그분께서 인간세계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실 때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행을 하고 고행을 하고 많은 기도를 한다고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탑을 세워 높아지려는 자들에게 나타나시지 않으시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존재를 알게 하십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자기 생명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다가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곳에 앉아 위세를 떨치며 사람들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다가가시는 게 아니라 억압당해 고통과 슬픔에 잠겨 낙심한 자들에게 다가가십니다.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영생을 예비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은 천국에 그들의 집을 짓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유익한 삶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 것을 막으시고 그들을 온 땅에 다 흩어놓으십니다. 결과적으로 인간들은 좁은 땅에서 옥신각신하며 권력다툼하며 살 상황에서 탈피하여 넓고도 풍요로운 땅을 받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넓은 땅의 복을 누리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한곳에 모여 권력다툼이나 하며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인간들에게 유익합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더 큰 복을 주시려 인간들이 소중하게 여기던 바벨탑을 헐어버리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소중한 것을 헐고 계십니까? 여러분을 좀 더 넓고 좋은 세계에 두시려 그러시는 겁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도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도 계속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큰 환난을 내리시어 온 세계로 흩어놓으셨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바벨탑을 헐어버리신 것이지요. 우정 때문에, 사랑 때문에, 인정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우정, 사랑, 인간관계를 헐어버리실 수도 있습니다. “자식이나 부모보다 나를 더 사랑해야 한다.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게 필요없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자신, 내 가족, 내가 속한 단체의 명예를 위한 삶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월을 아끼라 말씀하십니다. 쓸데없는 인생 목표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고, 그분의 자녀들인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 내 자신의 영생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학문과 철학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인본주의 사상을 고취시켜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합니다. 우리는 경건치 못한 허망한 철학이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안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허망한 인생 목표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면 안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제시하는 시시한 인생목표에 귀를 기울이면 안됩니다. 우리는 바벨탑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안됩니다. 바벨탑 건설의 주도세력이 외치는 소리에 우리의 귀와 맘을 빼앗기면 안됩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면 우리는 바벨탑을 세우려는 자들의 외치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리의 말씀만 알아듣게 됩니다. 타인의 인생 목표와 나의 인생목표는 다릅니다. 타인에게 좋은 것이라고 해서 나에게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타인은 나의 인생의 동반자도 선생도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 나에게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인생의 동반자는 하늘에서 나에게 내려오신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나의 듬직한 선생이시고, 오직 그분의 말씀만이 나에게 절대진리입니다. 나는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좇아 그분께서 인도하시는 장소로 삶의 터전을 옮깁니다. 땅 끝이라도 그분께서 인도하시면 그곳에 갑니다. 거짓되고 유익하지 못한 세속의 언어가 나에게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 될 때 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9절).” 반대로 내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깨달아 그 말씀에 순종하게 될 때 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거짓된 세상의 소리가 여러분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이 들을 수 있는 언어가 되어, 여러분이 세상이 제시하는 허망한 인생길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생목표를 따라 살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교(시29편) : 여호와의 말씀의 권능과 은혜 (0) | 2012.11.27 |
---|---|
설교(빌3:17-21) : 사도 바울을 본받읍시다 (0) | 2012.11.27 |
설교(시28편) : 진실된 자의 복 (0) | 2012.11.27 |
설교(사40:27-31) : 새 힘을 주시는 여호와 (0) | 2012.11.27 |
설교(시27편) : 나를 받아주시는 하나님 (0) | 2012.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