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30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새 힘을 주시는 여호와 English
말씀:사40:27-31
>> 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라. <<
오늘 말씀은 이방 나라에서 포로 생활을 하며 고통을 하소연하는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포로 된 자는 스스로를 구해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방나라에 멸망당하여 포로로 끌려가 갖은 고난을 다 겪고 있었습니다. 전쟁에 지면 포로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정복민은 전혀 피정복민의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이 70여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며 뼈 속 깊이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나라에서 살면 고생이로구나. 그래도 이스라엘 고향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게 좋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의 종으로 사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구나!’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자하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분의 자녀로서 사는 것이 큰 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귀찮다고 뿌리치고 나갔다가는 무자비한 자들의 종이 되어 신음하며 살게 됩니다.
포로 된 자는 자기 자신만을 바라볼 때 절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정복민이 자신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의 입에서 쉽게 나오는 것이 바로 불평입니다. 하늘을 향해 원망의 소리를 지릅니다. “하나님, 도대체 왜 제 사정을 모른 체 하십니까? 왜 제가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을 못 본 척 하십니까?(40:27)” 많은 자들이 억울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말로 여러분의 사정과 부당한 대우를 모르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28절).”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계셨던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께서 출생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땅 끝에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곳 사정과 여러분의 처지를 다 아시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자들의 속마음을 다 꿰뚫어 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사정이나 원통함을 그분께서 모르실까 전혀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무지(無知)나 무능(無能)이 아니라 내가 지금 고통에서 해방될 여건이 되는가입니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왜 내 사정을 모르시냐고 불평을 늘어놓는 대신 내 자신의 불찰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반성해야 합니다. 문제는 내가 나를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인은 흑암 속을 걷는 자와 같아서 자기가 무엇에 걸려 넘어졌는지도 모릅니다. 나를 넘어지게 했던 것이 무엇인지, 나를 노예로 만든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왜 사업에 실패했는지, 내가 왜 시험에 떨어졌는지, 내가 왜 회사에서 쫓겨났는지 그 이유를 과거의 내 삶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왜 이방인들에게 멸망당해 그들의 노예가 되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어엿한 나라를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는데, 그들이 먹고 살만하니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겼고, 약자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었습니다. 수백년 간 그 짓을 계속하자 하나님께서 어디 한 번 우상을 실컷 섬겨보고 노예 노릇 좀 실컷 해보라고 그들을 멸망당하게 하셔서 우상을 섬기는 이방 나라로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은 죄가 이스라엘인들이 지었던 큰 죄였습니다. 여러분 중에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이 있으시면 ‘성령님, 과거 제 삶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하소서. 회개의 마음을 저에게 주시어 제 죄를 회개케 하소서!’라고 기도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자신의 주관적 판단으로 자신을 의롭다 판정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세상 풍습에 맞춰 자신을 의롭다 판결하면 안됩니다. 성경 말씀과 여러분의 교회의 목사님 말씀을 기준 삼아 여러분의 삶을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회복이 먼저가 아니라 죄용서가 먼저입니다. 회복으로 인한 기쁨의 눈물이 있기 전에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의 눈물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악인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이를 뽀드득 뽀드득 갈며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댑니다. 그러나 의인은 자신의 삶을 반성합니다. 물론 내게 닥친 불행이 다 나의 죄 때문에 생겼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타인의 죄 때문에 내게 불행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죄를 지으면 자식에게 화가 임할 수도 있고, 자식이 죄를 지으면 자식 교육 잘못시킨 책임을 물어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벌을 내리실 수도 있습니다. 온 나라가 썩은 퇴폐 문화로 곪아 있다면 빛과 소금의 사명을 게을리 한 기독교인들에게 화가 임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유없이 장난삼아 인간들에게 화를 내리시지 않습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내게 화가 임하면 겸손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반항하는 자에게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회복의 복이 임합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또 내게 임한 화가 그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나의 무능 때문이었다면 그 문제로 하나님께 원망해야 합니까? 그러면 안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는 그분을 죄인취급 하고 있으니 어찌 망령된 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내 삶의 회복의 때와 내 삶의 반전(反轉)의 때는 원망과 불평의 때가 아니라 회개와 감사의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은 선합니다. 설사 그것이 형벌일지라도 선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올바른 믿음입니다. 지금 나의 처지를 진정 감사드릴 때 드디어 내 인생문제의 해결의 문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회개와 감사가 내 맘에서 넘쳐날 때 우리를 잡고 있던 마귀의 손아귀는 풀리고 우리를 묶고 있던 밧줄은 남김없이 끊어집니다. 어려운 처지를 비관하고 불평하는 것은 아직도 마귀가 그 마음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죄와 무능을 인정하고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자신의 그러한 처지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선한 분으로 믿고 감사드릴 때 더 이상 마귀가 내 맘에 똬리를 틀고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마귀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확 바뀝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권한과 능력의 혜택을 무한정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자녀의 권리입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사랑과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모른 체 하면 떼를 쓸 권한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시면 흔들어 깨울 권한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31절).” 여러분, 소리 높여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시여, 저를 도와주소서. 이 곤경에서 저를 구하소서!” 하나님께서는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십니다(29절).” 지금까지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도움을 구하고 살 길을 찾으려 헤매다가 지치셨습니까? 영육이 피곤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육을 강건하게 하시어 피곤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자신의 지혜와 지식과 힘의 한계에서 좌절을 겪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무능한 자에게 지력과 근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주십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도움을 간절히 구할 때 여러분에게 새 힘이 생깁니다. 이전에 여러분에게 없었던 것을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어 새로 있게 하십니다. 삼손이 성령의 능력을 받았을 때 사자도 찢어 죽였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받아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물론 병든 자도 살렸습니다. 요셉은 성령의 능력으로 해몽을 했습니다.
여러분 담대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31절).” 다른 길로 가지 마시고 기도 중에 하나님께 응답받은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 길은 여러분을 살리는 길이고 여러분을 회복시키는 길입니다. 걷다보면 양식과 물이 떨어져 힘들어질 거라고요? 그런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면 걸어가도 피곤치 않을 거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가는 길에 물과 양식을 다 마련해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엘리야가 먼 길을 가다 지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물과 양식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가시다 보니 목표 지점이 보이십니까? 그러면 달려가십시오.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31절).”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삶의 목표를 주시고, 여러분이 받을 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힘껏 달리십시오. 적어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위대한 비전을 보여주셨다면 그것을 얻으려다 지쳐 쓰러질 염려 같은 것은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거룩한 목표를 주시고 그것을 달성할 힘을 주십니다.
여러분, 옆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을 보며 겁먹지 마십시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30, 31절).” 여러분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난 자가 사업을 하다 실패해도 겁먹지 마십시오. 여러분보다 더 유식하고, 더 힘있고, 더 빽이 있는 자가 인생길 가다 쓰러져 넘어질지라도 절대 두려워 마십시오. 그들은 넘어지고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끝까지 붙드십니다. 혹시 여러분이 잠깐 넘어졌을지라도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에 살면서 실패할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도움을 갈망하십시오.
여러분의 눈앞에 태산(泰山)같은 장애물이 있습니까? 절대 걱정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강한 날개를 달아주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31절).”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도우시기 위해 비상한 방법도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앞에 홍해 바다가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쩍 갈라 큰 길이 나게 하셨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혔을 때 옥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사람들이 천으로 둘둘 말아놓았으나 우리의 구세주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셨고 그를 묶었던 것들도 다 풀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에게 해방을 선물하시려 그들을 지배했던 자들을 멸망시키시고 새로운 왕 고레스가 나오게 하시어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여러분의 앞에 있는 모든 장애물들을 하나님께서 다 깨부수십니다. 여러분의 앞에 장애물이 보이면 그저 하나님께 기도만 드리십시오. 여러분이 기적을 체험하면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자녀임이 확실하니 크게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는 피곤함과 곤비함이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귀찮게 굴며 도움을 요청해도 하나님께서는 절대 정신적으로 피곤해 하지 않으십니다. 짜증내지 않으십니다. 사랑과 자비가 많으신 그분께서 여러분을 긍휼히 여기시어 여러분을 모든 환난과 핍박에서 구원해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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