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35편) : 알곡 인생

stevision 2012. 11. 28. 09:26

 

(2007년 8월 25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알곡 인생                                                English
말씀: 시35편

  

 

>> 1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 5 저희로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몰아내소서. 7 저희가 무고히 나를 잡으려고 그 그물을 웅덩이에 숨기며 무고히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팠사오니 8 멸망으로 졸지에 저에게 임하게 하시며 그 숨긴 그물에 스스로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 .... 12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13 나는 저희가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14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같이 저희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굽히고 슬퍼하기를 모친을 곡함같이 하였도다. .... 2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저희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 26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들로 부끄러워 낭패하게 하시며 나를 향하여 자긍하는 자로 수치와 욕을 당케 하소서 .... <<

얼마 전에 대기업 회장 딸이 미국에서 자살을 했습니다. 인물도 괜찮고 괜찮은 대학도 나왔고 아버지께서 돈도 넉넉히 주어 1000억원 대의 재산도 갖고 있었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이 아가씨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남자친구와의 교제를 아버지께서 반대했기 때문이랍니다. 예쁘고 돈도 많고 좋은 교육도 받았건만 아름다운 것들로 자신을 채우지 못하고 마음이 텅 비어서 자살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또 얼마 전에는 기독교인 영화배우가 자살을 했습니다. 얼굴도 예쁘고 팬들로부터 사랑도 많이 받았는데 이 여자 또한 아름다운 것들로 자신을 채우지 못하고 마음이 텅 비어서 자살을 한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은 자신에게 세상적인 좋은 것들이 없을지라도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절대 마음이 공허해지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몸이 불구인 자들도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면 기쁨과 만족 가운데 살게 됩니다. 여러분, 비록 가난하더라도, 비록 건강치 못하더라도, 용모가 보통 이하라도 절대로 신세한탄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복과 기쁨은 돈 많고 건강하다고 얼굴 예쁘다고 주어지는 게 절대 아닙니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여성들의 경우 얼굴과 몸매가 자신의 처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내 행복의 결정적 요소는 못됩니다. 얼굴은 예쁜데 굶주린 암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싸우기를 좋아하는 여자는 절대 사랑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께서 계셔서 나의 모든 것이 되어주실 때, 내가 하나님의 소중한 보물이 될 때, 하나님께서 내게 오셔서 ‘나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실 때 나는 행복한 자가 됩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7:6-7).” 여러분의 재물의 양이 적을지라도, 여러분에게 인간적 장점의 수효가 적을지라도, 여러분에게 세상적 도움의 수단이 적을지라도, 그럴수록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부족함이 전혀 없는 자(시23:1)가 됩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

세상에는 겨와 같은 자가 있습니다. “저희를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5절).” 겨는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입니다. 겨는 여물지 못해 말라비틀어진 쭉정이입니다. 누가 겨와 같은 자입니까? 자신에게 있는 의와 거룩함과 같은 하나님의 형상을 다 잃어버린 자가 바로 겨와 같은 자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다 잃어버린 자, 자신 안에 아름다운 것들을 채우지 못하고 온갖 잡스런 더러운 것들로 가득 채워 놓은 자가 바로 겨와 같은 자입니다. 겨와 같은 자는 의인과 다투고 싸우기를 좋아하고(1절), 의인을 해치려 쫓아다니고(3절), 심지어는 의인을 죽이려 하고(4절), 의인을 해치려 함정과 덫을 놓고(7절),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고(10절), 있지도 않은 일을 사실인 것처럼 말해 남을 모함하고(11절), 선(善)을 악(惡)으로 갚고(12절), 심지어 가까운 친구도 배반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13-16절), 친구가 환란을 당하면 기뻐하고(15절), 거짓말을 즐겨하는 자(20절)입니다. 이런 자들은 일찌감치 하나님을 마음에서 떠나시게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양심을 돈과 쾌락과 명예를 위해 헐값에 팔아버린 다음에, 마귀에게 마음문을 활짝 열어 환영하여 온갖 더러운 마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가득 채우고 삽니다. 이런 자들은 선을 싫어하고 빛을 싫어하고 하나님과 의인들을 싫어합니다. 이런 자들은 악을 좋아하고 악인들을 형제처럼 여깁니다. 이런 자들이 선을 악으로 갚는 이유는 선한 자들의 호의를 선으로 갚으면 그들과 친구가 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악한 짓을 하기가 좀 곤란하거든요. 그런 자들은 선을 행하는 것 자체가 좀 적성에 맞지 않고,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것을 희생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그런 자들의 악한 머리에서 자신을 희생할 것을 스스로에게 명령하겠습니까? 또한 그런 자들은 이미 저주받아 선을 행할 능력이 상실되어 있습니다. 돈없어 도둑질해먹고 사기쳐서 근근히 입에 풀칠하는 자가 어떻게 자기 돈을 들여 남에게 선을 갚거나 행합니까? 자기에게 선을 행한 자까지 팔아먹어야만 그나마 며칠 먹을 양식이 확보되는 상황이니 그가 받은 저주의 깊이가 참으로 심오(?)합니다. 이게 바로 겨와 같은 자, 쭉정이와 같은 자의 삶입니다. 이런 자들은 지옥불에 던져지기 전에도 뜨거운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합니다. 이 자들의 마음은 분노와 질투와 증오와 시기와 원한의 불길에 휩싸여 스스로 고통당합니다. 이런 자들의 마음에 기름을 끼얹는 게 바로 의인이 출세하고 의인의 삶이 형통하여 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바람 한 번 불면 이 땅에서 사라집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을 공허하게도 하지 마시고, 나쁜 것들로 채우지도 마시고, 오직 귀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보화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 보화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마음 가득히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자입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24절).”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 다윗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한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단절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적도 있었고,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 자신의 많은 보화와 재물을 내놓았습니다. 세상보다 자기의 재물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 자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모셔들일 때 우리는 알곡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의(義)가 되어주시고, 하나님께서 나의 거룩함이 되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내 안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내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열매는 바로 내게서 맺혀집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맺혀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열매를 내가 발견할 때 참된 기쁨이 나를 황홀하게 만듭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9절).” 하나님의 능력과 공의의 열매는 내게서 맺혀집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어 악하고 불의한 자의 공격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나에게 승리를 안겨주시기 때문입니다.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3-4절).” 부모가 자녀의 더러운 몸을 씻기고 곱고 깨끗한 옷을 입혀주듯 하나님께서는 자녀인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온갖 귀한 것들로 채우시고 입혀주십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붙은 자가 되어 포도 넝쿨처럼 향기롭고 달콤한 열매를 절로 맺습니다. 곡식이 햇빛을 받아 날로 열매가 실(實)해지듯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살면 날로 실한 알곡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살면 공허함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나의 진선미(眞善美)가 되어 주십니다. 내가 스스로 맺어야 할 열매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알곡입니다. 자기가 봐도, 남이 봐도, 하나님께서 보셔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실하고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다윗은 평생토록 하나님을 경외한 자입니다. 알곡의 삶을 사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삽니다. 그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같이 저희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굽히고 슬퍼하기를 모친을 곡함같이 하였도다(14절).” 다윗은 친구의 불행이 안타까워 마음속 깊이 슬퍼했던 자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친구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자입니다. 이웃의 불행을 슬퍼하고 이웃의 행복을 진정 기뻐하는 자가 알곡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타인이 불행을 당할 때 이상하게 자기 자신이 위로받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힘들게 살고 있어서 타인의 불행을 보며 이상하게 위로를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타인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모친을 곡함같이 슬퍼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벌받고 있는 자를 보면서 기분 좋아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십니다. 그러니 의인에게 불행이 임했을 때 좋아라 하면 어떤 결과가 임하겠습니까? 나 자신을 위해서도 속으로라도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면 안됩니다. 아울러 하나님께 복을 받아 크게 성공한 자를 보며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것도 몹쓸 병입니다. 죄짓지 않고 의로운 가운데 하나님께 복을 받아 크게 성공하면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알곡은 쭉정이의 죄를 멀리하는 자입니다. 위에 언급한 쭉정이의 죄는 알곡을 썩게 만듭니다. 반은 썩은 낱알이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미련없이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 그나마 부족하지만 쓸모있는 알곡이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무죄한 자로 남아있기 위해 애 많이 쓴 자입니다. 자신 안의 쭉정이들을 바람에 날려버리기 위해 다윗은 때론 자기 침상이 눈물바다가 되도록 회개기도 했습니다. 내 안에 쌓여 있는 쭉정이와 같은 죄들을 다 날려버릴 때 나는 흠없는 의로운 열매가 됩니다. 27절에 다윗은 ‘나의 의’를 말합니다. 알곡과 같은 자는 자신의 의를 지킬 뿐만 아니라 타인이 의로운 삶을 살도록 지도하고, 의로운 삶을 사는 자들을 보며 기뻐합니다. 도둑은 도둑질 전문가를 보며 존경스러워 하고 기뻐하지만 알곡은 의로운 자를 보며 기뻐합니다. 알곡은 혀를 의롭게 쓰는 자입니다(28절). 혀의 열매는 하나님을 높이며 그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인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복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네 친구들이 너를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오늘 시편 35편 말씀 1절에도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다른 자가 나를 향하여 저주의 말을 퍼부으면 혹시 하나님께서 그 자의 입을 통해 나에게 심판을 선언하는 것이 아닌지 고심하며 주눅이 들어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저주의 말을 하는 자는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경솔한 저주를 금하시는 것이고, 그렇게 경솔히 행하는 자에게 그 자의 입에서 나온 대로 그에게 저주가 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축복의 말을 해주면 그 자는 큰 힘을 얻고 용기를 내어 삽니다. 때론 아름다운 축복의 말이 마귀의 공격을 받고 있는 의로운 자에게 승리의 확신을 주기도합니다. 때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성경 말씀 한 구절이 나에게 큰 힘을 주고, 남이 부르는 찬송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축복의 말은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큰 유익을 주므로 그런 축복의 말을 잘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 축복의 말은 이웃의 행복을 자신의 기쁨으로 여기는 자만이 할 수 있기에 그 마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알곡의 삶을 살고 있는 자의 주인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알곡의 삶을 살고 있는 자를 미워하여 공격하면 도리어 하나님의 미움과 공격을 받습니다. 결과는 참담한 패배이지요.

하나님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알곡이 되어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받으시고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