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25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하나님을 존중해드림 English
말씀 삼상2:27-36
>>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찌라. 32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33 내 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 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 <<
교회 성전을 자기 소유로 해놓고 교회개척을 하면? 교회가 부흥되지 않으면 다른 자에게 팔아치우고 자본금 회수하여 떠나겠다는 속셈이 아닐까요? 아니면 어떻게 어떻게 잘 버텨 목사 안수를 받은 다음에 다른 자에게 팔아치우고 목사의 자격으로 적당히 하나님의 일에 관여하며 자기 재산으로 맘 편히 살아보겠다는 심보가 아닐까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집에 세들어 사시는 격이 되네요. 아예 성직에 들어서지를 말지 그렇게 세상과 하나님 양쪽으로 양다리 걸치며 뭘 하겠다는 겁니까? 하나님이 거지입니까?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야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의 은덕을 받아 사셔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믿음과 그런 정신으로 무슨 성직에 들어서겠다는 겁니까? 그래서는 목회에 성공할 수 없지요.
예배 시작 시각이 들쭉날쭉하고 설교 시간이 왕창 길었다 짧았다 하고, 새벽예배를 드렸다 말았다 하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교회를 맡고 있는 목회자가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세상에 목회자가 뭐가 그렇게 다른 일에 바빠서 예배 시간 직전까지 설교 준비를 한답니까? 설교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성도들이 감동을 받지 않게 되어 억지로 감동을 주려다 정해진 시간에 설교를 마치지 못하고 횡설수설 해대며 30-40분 설교가 길어져 듣는 성도들 따분할 뿐이지요. 이런 일을 상습적으로 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 자는 제사장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예배를 멸시하는 자입니다. 그런 식으로 목회를 하면 절대 부흥이 되지 않지요. 그런 목회자를 보며 처음 온 성도들은 생각합니다. ‘이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지 않구나.’ 그러니 한 두 번 왔던 초신자들은 발길을 다른 교회로 옮기고, 기존의 기둥과 같은 성도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다 떠나지요.
바울이 한 말이 있습니다. 성직자의 집은 은혜로운 분위기이어야 한다고. 목사와 사모가 대판 목청껏 싸우고 함께 교회에 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예배를 드리면 성령께서 떠나 계시고 마귀가 참관하는 예배가 됩니다. 이런 교회는 한순간에 공중분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그 예배는 예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여 계시는 목사님의 가정이 돼야 그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됩니다. 목회자의 가정은 교회 안의 교회입니다. 안의 교회가 부흥해야 밖의 교회도 부흥합니다. 안 교회가 공중분해 되어 있다면 조만간 바깥 교회도 공중분해 되고 맙니다. 목사와 사모가 더러운 말로 대판 싸우고 예배에 참석하면 이 둘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더럽히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들은 지키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남보고 지키라고 설교시간에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 자가 있다면 얼마나 그 예배를 멸시하는 자입니까? 제사장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깨끗한 제의(祭衣)를 입고, 먼저 자신의 죄 문제를 다 해결하고 나서 성무(聖務)에 임합니다. 예배에 설교를 맡은 성직자는 예배 전에 무심코 들었던 더러운 말도 귀에서 씻어내고, 무심코 본 더러운 그림도 눈에서 지워야합니다. 물론 고의로 그런 말을 하거나 들어서도 안되고 일부러 그런 더러운 것들을 봐서도 안됩니다. 정해진 예배 시간 직전까지 설교를 준비할 게 아니라, 설교는 미리 미리 준비해 두고, 예배 시간 15분 전에 먼저 제단에 나와 무릎을 꿇고 자신의 더러운 마음과 영을 기도 가운데 씻어내야 합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이 본격적으로 제물을 드리기 전에 물로 씻지 않았습니까? 목회자가 온전치 못한 상태로 예배를 인도하면 자기 자신이 먼저 해를 당하고 성도들에게까지 해를 끼칩니다.
우리나라에는 교회 돈을 제멋대로 사용하고, 하나님이나 성도님들보다 자기 자식을 더 사랑하여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성직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때로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목사들이 있어서 대한민국 교회의 영적 권위가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엘리 제사장에게 어느 한 하나님의 종이 와서 심판을 선언한 말씀입니다. 엘리 제사장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함부로 다루고 자기네들 멋대로 처분했고, 성전에서 일하는 여자를 건드려 섹스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보다 이 두 아들을 위하여 이들을 엄히 꾸짖어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가 자식들의 죄를 책망한 적은 있으나 한 두 번 그랬다고 책임이 면제됩니까? 그것은 책임을 다 한 게 못됩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오르는 온갖 반기독교적인 글들은 현대판 홉니와 비느하스와 엘리 제사장들의 악한 신앙 행태에 기인합니다. 사람들은 기독교를 개독교라 하고 목사를 먹사라 합니다. 옛날에 잘 나가던 목사들이 부흥회 다니며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많은 성도들에게 큰 은혜를 끼쳤으나 그들이 먹고살만해지고 삶에 여유가 생기자 여유 만만했던 다윗이 딴 생각을 품고 죄를 범한 것처럼 성직자로서 더러운 죄를 범하여 대한민국 전체의 복음전파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요즘은 또 선거철이라 먹고살만해진 목사들이 시간이 남아 정치에 뛰어들어 영향력을 끼치려 하고 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이 당신의 나라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도 그분의 종이라 자처하는 자들이 세상 권세를 좇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느니라! 한국의 연세 드신 목회자들 가운데에는 정치의식이 투철하신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옛날 생각으로 머리가 굳어 계신 것을 볼 수 있고, 성령과는 전혀 상관없이 행동하고 계시더군요. 물론 스스로는 그게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하겠지만 정치참여가 무슨 하나님의 일입니까? 나라가 복음화 되고, 참된 민주주의가 되고 번영하고, 평화통일이 될 수 있도록 기도나 열심히 하세요.
목회자가 성전을 자기 소유물로 삼고, 헌금을 제멋대로 사사로이 쓰고, 거룩함을 지키지 못한 채 목회에 임하면 이는 하나님의 제사와 제물과 예물을 멸시하고(삼상2:17절) 발로 밟는 행위(삼상2:29)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고귀한 직분을 맡았는데도 은혜를 망각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형벌을 내리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의 성직을 박탈하시어 다른 자에게, 즉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다른 자에게 주십니다.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30절).” 성전을 거룩하게 지키고, 예배를 거룩하게 드리는 목회자가 끝내 목회에 성공합니다. 성전과 예배를 더럽히는 자나, 예배에 불성실하게 임하는 목회자는 엘리 제사장 집안처럼 성직을 박탈당하게 됩니다. 거룩한 성전 안에 부처 우상을 세워놓으면 지독한 우상숭배이고 지옥에 갈 일이지요. 그런데 정신나간 성직자 중에는 설교 시간에 ‘부처님 말씀이 어떻고...’라고 말하며 부처의 권위를 세워놓습니다. 이는 예배 시간에 제단에 자기 똥을 싸놓는 것보다 더 한 행동이고, 구약 시대에 돼지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보다 더한 짓입니다. 성직자가 그렇게 예배를 멸시하고 짓밟으면 안되지요. 세상에 그런 배신행위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이후로 교회와 신학대학교에 부처 우상을 세워놓는 자들의 성직이 박탈될지어다! 이후로 교회와 신학대학교에 동성애 정신병자의 동상을 세워놓는 자들의 성직이 박탈될지어다! 이후로 하나님의 성전 안에 머리 빡빡 깎은 중들이나 비구니들을 초대하여 행사를 벌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엘리 집안에게 멸문지화의 심판을 내리십니다.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찌라. ...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리. ...” 실제로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쟁에 나가 한 날에 죽었고, 이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도 충격에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고, 사울 왕은 엘리 집안의 제사장들을 많이 죽였고, 나중에 솔로몬 시대에 제사장직은 사독 집안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성직에 들어서시는 분들은 오늘 본문 말씀 엘리 제사장 집안 이야기를 똑똑히 마음에 새기십시오. 목사안수 받았다고 다 된 줄 아십니까? 천만의 말씀! 이름뿐인 목사가 얼마나 많은데요. 하나님을 배반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36절에 보니 엘리의 자손들은 빌어먹는 자들이 될 것이라 합니다. 제사장이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져온 가장 좋은 첫열매를 먹고 살지만, 하나님을 배반하여 그 직에서 쫓겨난 자들은 말 그대로 빌어먹게 됩니다. 원통해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성직자가 계속 성직을 수행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자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용서받아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하지 못하면서도 형벌을 받지 않았다면 이 자는 하나님께 영원히 버림받은 자입니다. 형벌보다 더 무서운 게 하나님의 무관심과 포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자로부터 투자비용을 회수하고 계시는 중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에게 여러 가지 은혜와 도움을 베푸셔서 목사로 만드셨으니 그에게 일을 계속 시켜 투자비용을 회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배반한 이 목회자는 죽을 때까지 열심히 일하여 자기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다 갚고 나서 지옥에 떨어집니다.
한국의 목회자들 중에 몇몇 분들이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대리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 예배의 시간과 형식을 규정하거나 자신의 기분에 따라 예배 시간에 맘대로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지요. 목회자는 예배를 준비하는 종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성도들에게 은혜롭게 그 말씀을 전해주는 종입니다. 오히려 예배의 주체는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과 성도들입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설교만 준비하는 것은 때에 따라 다양한 좋은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한을 훼손하는 것이고, 자신의 일시적 기분에 따라 자주 설교 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것은 잘 정돈된 하나님을 말씀을 받고자 하는 성도들의 권리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성도들에게 향해있고, 성도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향해있는 자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모든 성도들보다 더 마음을 다해 신령하고 진정한 예배를 드려야지요. 규모 있고 잘 정돈된 예배 가운데 성령께서 임재해 계십니다. 잘 정돈된 예배가 드려지는 교회가 부흥합니다. 목회자의 게으름과 무례함이 엿보이는 예배는 하나님께서도 싫어하시고 성도들도 싫어합니다.
여러분,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언행이 무례한 자를 매일 쳐다보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보다 더한 고통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내를 존중해주는 남편, 남편을 존중해주는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렇습니다. 우리말에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라고 그분께 가볍게 행동하면 안되지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한 분이신데 그분의 마음을 섭하게 합니까? 하나님 측에서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보시고 우리를 얼마나 높여주셨는지 이전의 설교 말씀을 통해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욱 그분을 존중해드립시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귀한 사랑과 은총을 깨달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분을 더욱 존귀히 여기는 자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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