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36편) : 신실하신 하나님

stevision 2012. 11. 28. 09:32

 

(2007년 9월 1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신실하신 하나님                                   English
말씀: 시36편

  

 

>> .... 5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6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 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8 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리이다. 9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10 주를 아는 자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하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의를 베푸소서. 11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미치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12 죄악을 행하는 자가 거기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 <<

루터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내 죄가 정말로 다 용서받아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되어 하나님과 화해되어 그분의 진노를 피하는가’입니다. 바울과 루터 덕분에 저는 그러한 문제는 해결함을 보았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어 구원받음을 저는 믿고, 죄 문제와 관련하여 저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삽니다. 그런데 저에게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바로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신실하신 분이신가?’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믿을만한 분이신가? 이러한 질문은 하늘만 바라보고 살 수 밖에 없는 형편에 있는 자들이면 다 마음에 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본문의 다윗은 말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신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5절).” 부모님 빽, 학벌 빽, 사람 빽 등 여러 빽이 없어서 하늘만 보고 사시는 분들 계십니까? 다윗도 여러분들처럼 갖가지 빽이 없어서 하늘만 쳐다보고 하나님만 믿고 따르는 삶을 살았는데, 그런 다윗이 말합니다. “하늘과 공중에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꽉 차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분을 한 번 믿어보셔도 됩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다윗이 발견한 하나님의 의(義)와 판단은 어떠한 것입니까?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큰 산들, the great mountains(KJV))과 같고, 주의 판단은 큰 바다(깊은 바다, a great deep(KJV))와 일반이라(6절).” 사람들은 국가의 법이 가장 정의로운 것이라고들 하나 불의한 국가법이 얼마나 많습니까? 때론 독재자가 제멋대로 법을 만들어 무고한 양민을 죽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제멋대로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법은 총칼을 가진 자들 앞에 너무 무력한 존재입니다. 이 땅에서는 믿을만한 법(法)이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신뢰를 둬도 될 법이 이 세상 나라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의(義)는 권력을 잡은 힘있는 자(者)의 자의적(恣意的) 판단에 종속적입니다. 문제는 권력을 잡은 자들이 그렇게 썩 선하지 못하다는 데 있고, 그들의 권세가 10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데에 있습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이 세상에는 의가 없고, 그나마 있는 불완전한 의도 잠시 후면 사라진다는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크고 높은 산과 같습니다. 그 누가 에베레스트 산을 옮길 수 있습니까? 세상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무게와 높이가 그 높은 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절대적으로 의롭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조변석개의 하나님이 아니심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절대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발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법이 모든 자들에게 최종적 판결을 내림을 우리가 인식할 때 우리는 세상 물결에 휩쓸려 살다 불의한 자들이 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판단이 깊은 바다와 같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속깊은 판단을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훤히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네가 옳고 네가 그르다’라고 말씀하실 때 그 누가 그 판단을 그릇되다 할 수 있습니까? 모든 사정을 다 아시는 그분께서 ‘그것을 하지말고 이것을 하라’ 하셨을 때 그 누가 그분의 지도와 교훈이 그릇되다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분의 의가 높은 산과 같고 그분의 판단이 깊은 바다 같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의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그분의 판단이 납덩어리에다가 금을 살짝 입혀놓은 장신구와 같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끝까지 신뢰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의와 그분의 판단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총명한 머리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분의 의와 그분의 판단을 신뢰하십시오.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시92:5).”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16:20).” 하나님을 신뢰하면 부하게 살 수 있냐고 혹시 물어보실 분이 계실까봐 성경 말씀 하나 더 듭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부유하게 되느니라)(잠28:25).”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 때 돈을 많이 못 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재물이 많지 않아도 하나님 안에서 풍족하게 사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윗이 본 하나님의 신실하신 행동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6절).” 파괴자는 절대 신실한 자가 못됩니다. 가정을 파괴하는 자, 살인하는 자, 방화(放火)하는 자, 불효하는 자, 이간질하는 자, 강간하는 자는 신실한 자들이 절대 못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사람과 짐승을 창조하시고 이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직장, 건강, 명예, 생명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분을 인자하신 분으로 믿고 그분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할 때 그분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7절).” 요즘 많은 분들이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병으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해주십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경제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수고스럽고 무거운 빚의 짐에서 구하실 분은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실직하여 카드빚에 시달리시는 분들께서는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며 그분의 자비는 한이 없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으로 먹이십니다. “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그들을 주의 복락(기쁨)의 강을 마시게 하십니다(8절).” 여러분, 사정이 되시면 맛있는 음식 맛있게 드십시오. 좋은 음식은 하나님의 귀한 복입니다. 먹는 게 남는 거라고 하지요. 맞는 말입니다. 사치는 하지 말되 적정 가격의 진미(珍味)는 자주 드시고, 드실 때마다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 너무 잘 먹어 탈입니다. 음식을 절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일하기 싫거든 먹지 말라’고 합니다. 요즘은 이것을 ‘적게 운동하는 자는 적게 먹어야 한다’는 말로도 해석해야 할 판입니다. 식사량을 줄이면 비만문제를 깨끗이 해결할 수 있음에도 많은 자들이 비만으로 고생하는 것은 어리석고 절제심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저의 체중관리 비법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허리 30인치를 마지노선으로 정해놓았습니다. 허리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면 식사 전에 줄자로 재봅니다. 30에 거의 근접해 있으면 평소 식사량의 반 정도만 먹습니다. 그게 비법입니다. 낮에는 활동을 하니 대충 배가 고프지 않게 먹고 저녁에 주로 식사조절을 합니다. 또 과자니 빵이니 그런 것들은 특별히 먹고 싶을 때가 아니면 입에 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침 식사 전의 허리 둘레를) 항상 29에서 30을 유지합니다. 또 다른 비법이 있다면 지방질이 많은 고기를 가급적 피하고 주로 곡식을 먹는다는 겁니다. 그래야 체중을 유지하려 할 때 나타나는 심한 배고픔을 피할 수 있습니다. 지방질 많은 고기반찬이 있는 식사를 주로 하며 체중을 관리하려면 정말 피눈물나는 배고픔을 견뎌야 합니다. 배에 기름으로 붙어있는 나의 비곗살은 절대로 평소에 포만감을 주지 않습니다. 기름기 음식은 곧장 배의 지방질 저장소로 직행해버립니다. 그래서 고기 많이 먹고 체중조절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배의 비계살이 많아도 식사 때가 되면 배고픔을 느끼는 게 내 몸의 작동방식입니다. 또 식사 때 우리의 몸은 위에 들어오는 에너지 양에 따라 반응하는 게 아니라 음식물의 부피에 따라 반응하여 포만감을 느낍니다. 지방은 에너지밀도가 탄수화물보다 훨씬 많습니다. 매일 소고기나 돼지고기 구워먹으며 배 안고플 정도의 식사를 하면 반드시 비만에 걸립니다. 주로 잡곡을 주식으로 식사를 하되 몸이 좀 허한 느낌이 들면 그 때 적정량의 고기를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고기를 자주 드실 경우에는 적당히 밥의 양을 줄이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지요. 어떤 때는 제 허리가 30에 근접해 있는데도 잠자기 전에 심한 허기를 느끼게 됩니다. 이 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이 때 간단히 라면 하나 삶아먹으면 마귀(?)의 시험에 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식사는 허리둘레를 기준삼아 조절해야지 배고픈 느낌에 따라 하면 안됩니다.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우리가 성장기의 식사량을 계속 유지하면 반드시 비만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성장기의 식사량은 몸이 성장하는 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키가 성장하기를 멈췄는데도 계속 옛 식사량을 유지하면 옆으로 옆으로 둘레로 둘레로 몸이 퍼집니다. 따라서 성장이 멈춘 나이 이후로는 필연적으로 식사량을 줄여 어느 정도 배고픔을 참아야 적정체중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 나이가 들수록 에너지가 적게 소모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옛날보다 식사량을 더 줄여야 하겠지요. 그런데 새롭게 식사량을 정해도 처음에만 좀 배고프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습니다. 물론 육체노동을 하는 많이 하시는 분들은 양껏 드셔도 별 탈이 없을 겁니다. 그게 바로 육체 노동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지요. 좋은 음식이 하나님의 복이 돼야지 내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독이 되면 안되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울러 체중 조절 중에 자기도 모르게 너무 살이 빠져 건강에 해로울 수 있음을 간과하면 안됩니다. 체중이 너무 줄어 몸이 자꾸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는데도 자꾸 음식량을 줄이면 안됩니다.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게 좋겠지요. 또 체형이 젊어서는 뱃살이 적고 나이들수록 뱃살이 붙는 것 같습니다. 아줌마가 처녀 시절의 체형만 생각하여 자꾸 무리하게 다이어트하다간 건강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뒤에 좋은 것 숨겨두시고 안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본심을 어디서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종류의 제사가 있지만 어떤 제사는 하나님 몫이 피와 기름덩어리이고, 나머지는 인간 몫입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하나님께서 맛없는 부분 드시고 인간이 맛좋은 부분을 먹는 거지요. 또 하나님께서는 꿀을 제물로 바쳐 불사르지 말라(불살라 바치는 제물에 꿀을 섞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귀하고 제일 좋은 음식은 너희들이나 먹으라는 뜻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족한 복을 주시어 우리가 복락(기쁨)의 강을 마시기를 원하십니다(8절). 어머니의 사랑이 귀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미가 자식을 잊을지라도 당신께서는 우리를 절대 잊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7절).”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분께서 우리들을 전혀 부족함 없이 살게 해주신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악인의 패망과 의인의 승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죄악을 행하는 자가 거기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12절).” 의인을 괴롭히는 악인이 사라져야 의인의 행복이 보장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의인을 괴롭히고 괴롭혀 멸망당하는 형벌을 받을 정도의 죄가 찼을 때 불시에 그를 치셔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신실하신 심판자이시고, 신실하신 보호자이시고, 신실하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고약한 자들을 쓰러지게 하시고, 결국 마음이 순한 자(온유한 자)가 악인들의 땅을 차지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맛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악인의 패망과 자신의 승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웃집 악인, 직장의 악인, 사회의 악인들 때문에 괴로워 죽을 지경이십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그들의 죄가 다 차면 그들은 그 자리에서 사라질 것이고, 그 자리를 여러분이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형벌에 합당할 정도의 죄가 차야 그 형벌을 내리십니다. 마찬가지로 악인들 사이에서 의로운 고난을 받기를 오래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실히 보인 자에게 좋은 자리를 허락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악인에게 고통을 받으면서도 꾹 참은 자에게 악인이 차지했던 자리를 주는 것이 순리 아닌가요? 우리가 의로운 고난을 당하며 인내의 기간을 거치는 것이 절대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생각할 때 세상의 악을 무서워하지 않고 그것을 견디며 이기는 힘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하늘만 바라보고 살았던 다윗이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이시라 합니다. 목동에서 일국의 왕이 된 다윗의 말이니 그의 말에 신빙성이 있어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윗의 신앙만 본받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실한 분이 되실 게 분명합니다. 다윗은 악인들의 정신상태를 혐오했습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1절). 악인들은 자신들의 죄가 발각되지 않을 거라 믿었습니다(2절). 그들은 죄지을 일만 생각하고 악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4절). 그들은 교만했습니다(11절). 그러니까 우리는 다윗의 신앙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 앞에 겸손하며,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고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 뜻에 따라 선한 삶을 살기로 작정하면 되겠군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보호자와 양육자가 되어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