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골1:20-23) : 하나님과 화평을 이룸

stevision 2012. 11. 28. 09:36

 

(2007년 9월 5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하나님과 화평을 이룸                                  English
말씀: 골1:20-23

  

 

>>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여러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평이 깨진 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은 바로 마귀가 인간의 마음에 거짓을 말했고, 인간이 그 거짓말을 진리로 받아들였을 때였습니다. 마귀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거짓으로 인정하는 셈이 되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알고 있으니 당연히 하나님께서 인간과 담을 쌓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대 하나님과 인간을 원수지간으로 만드는 자는? 거짓 복음을 전파하는 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좋은 것인 양 가르치는 자가 바로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가 되게 하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과 친한 관계를 맺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현재의 한국 교회에 대해 언짢게 여기시는 게 뭔지 아십니까? 성직자들이 사회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하나님께서 불쾌해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비난을 받는 거야 순교자의 상을 받아야 할 일이지요. 그러나 좋은 자리 차지하기 위해 불법, 탈법, 저지르고, 자리 욕심과 재물 욕심과 명예욕심이 넘쳐나는 일부 목사들 때문에 전체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까지 신뢰와 존경을 잃었습니다. “아! 저 썩어빠진 탐욕스런 삯꾼 목사들! 또한 제 아비 덕에 좋은 자리 차지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만만하게 설교하는 그들의 자식 목사들이여! 당신들이 최소한 우상을 섬기는 중들보다야 더 나은 인격을 가져야 하지 않겠소?”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자들을 떠받드는 한 하나님과 한국교회와의 진정한 화해는 이룩되지 않은 것입니다.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찌니라(신13:5).” 제발 부적격자를 목사로 안수하지 마십시오. 교회 건물 구입해 놓고 자기 교단으로 들어오겠다는 자에게 함부로 목사안수 해주지 마시오. 요즘 TV에서 가짜 박사학위 소지자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대한민국의 목사들이 가짜 학위 소지한 자들 중에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인가 대학에서 날림으로 작성한 학위논문을 제출하여 속전속결로 학위를 딴 목사들이 있는가봅니다. 가짜 박사학위 받아 하나님 영광에 먹칠하라고 성도들이 당신들에게 돈 줬소? 가재는 게 편이라고 스스로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라 하는 자들이 어쩌면 그렇게 다른 목회자의 불법, 탈법, 거짓을 너그럽게 용인하는지! 이런 교회의 거짓문화를 죄라 외치지 않는 한국교회는 지금 하나님과 화해되어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비싼 돈 들여 가짜 박사학위 받고 성도들에게 ‘나 신학박사다’, ‘나 목회학박사다’, ‘나 철학박사다’라고 허풍을 떤 자들은 공개적으로 성도들에게 사죄해야 합니다.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는 거짓말쟁이 목사들을 그 교회 교인들이 ‘사랑(?)’으로 용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한 하나님과 그 교회 교인들과의 화해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국의 목회자들이여, 제발 깨끗한 손을 가진 자들이 되시오. 깨끗한 손으로 하나님의 손을 잡고, 깨끗한 손으로 성도의 손을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깨끗한 손으로 성도들에게 안수기도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누가 과연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자입니까? 진리를 말하는 자가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자입니다. 계속되는 죄를 덮어주는 것은 절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짓는 자를 죽이는 것이고, 하나님과 그 자를 철천지원수로 만드는 것입니다. 죄짓는 자는 마음이 어두워 자신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죄짓는 가운데 그는 자기가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고, 하나님과 화평한 가운데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는 분명 지옥갑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화해케 하는 자는 죄짓는 자에게 “너는 지금 이러이러한 죄를 짓고 있으니 하나님과 원수지간이다”라고 말해줍니다. 요즘 한국 교회에 ‘이것이 바로 사악한 죄입니다’라는 옳은 소리가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진리를 말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화해시켰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과 다윗을 화해시켰습니다. 다윗의 은밀한 죄를 들춰내 추궁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나단과 같은 용기있는 선지자가 많지 않습니다. 같은 교단에 속한 동료 목사들끼리 ‘00목사, 당신 그러면 안 돼. 그것 죄야’라고 진리를 말해 그 자와 하나님을 화해시킬 자들이 얼마나 됩니까? 자기에게 목사안수를 해준 감독이나 노회장에게 가서 ‘목사님, 제 신앙 양심으로 볼 때 지금 목사님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납니다’라고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자들이 얼마나 됩니까? 진리를 말하는 자는 하나님과 사람을 화해시키는 자이고, 진리를 말하는 자는 마귀의 올무에 빠져 있는 자를 해방시켜 자유케 하는 자입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었을 때 이스라엘인들이 모압 여인들과 난잡한 성행위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어 책임자를 사형시켰고 사람들은 슬픔에 젖어 있는데 한 이스라엘인이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집에 가더니만 음행을 저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제사장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그 남녀를 창으로 찔러죽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진노로 발생했던, 이스라엘인 2만 4천을 죽였던 역병이 그쳤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민25:11-13).” 하나님의 노하심이 풀려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해가 있게 됩니다. 악을 철저히 징벌하여 제거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과 사람을 화해케 하는 자입니다. 교회 내의 악을 제거하는 것을 ‘사랑이 부족한 처사’라고 가증스런 말을 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용서는 죄를 뉘우치고 바른 삶을 살겠다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교회법입니다.

예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고 그 자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성자 예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완전히 동일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외아들이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가 있게 하셨습니다. 먼저 그분께서는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씀도 그분께서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일컬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1:17).” 예수께서는 당시에 위선적인 신앙행태를 보인 자들에게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자신들은 죽자마자 곧장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갈 줄 알고 있던 자들에게 착각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시대를 향하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결국은 그 시대에 많은 자들을 죄인들로 규정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이 땅으로 성육신하여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성부 하나님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아시고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세리나 창녀나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실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사랑하시어 그들과 화해하고 그들에게 영생을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말씀을 진리로 믿으면 하나님 아버지와의 원수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완전한 화해를 이루어 그분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살게 됩니다.

진리를 말한다는 것은 쉬운 게 절대 아닙니다. 바울서신들이 왜 진리입니까? 그것은 그 말씀들을 기록한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편지는 자신의 의로운 삶의 요약입니다. 바울이 겉으로는 의롭게 사는 척하며 뒤에서는 온갖 불법을 다 저질렀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편지들을 성경이 되게 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지요. 바울서신은 바울에 의해 실행된 진리가 글로 기록된 것입니다. 물론 현재의 어떤 타락한 목회자가 바울서신을 주제로 멋진 설교를 했다면 그 말씀은 진리이지요. 도둑놈이 남의 집에서 금 덩어리 훔쳐와서 ‘이것은 금이다’라고 말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직접 실천하지 않는 진리를 타인에게 행하라고 말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의 설교는 영적 파워를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은밀히 더러운 죄를 범하는 목회자 보시오. 당신 주위의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 알만한 자들은 말은 안해도 당신의 행위를 다 알고 있으니 부끄러운 줄 아시오. 내 삶이 의롭지 못하고 진리의 삶이 아니라면 내가 한 말들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과 사람을 화해케 하는 자는 반드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죄가 없으신 분이시라고 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자가 되시기 위해 온갖 고난을 다 당하시면서도 의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하시는 진리의 말씀들이 진짜 진리가 되게 하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다 견디시고 의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이단의 괴수 ㅁ*교의 조* 스**는 여러 첩들을 거느리면서 “내 삶이 혹시 불의하게 느껴지더라도 내가 받은 계시는 맞으니 내 말을 믿으시오”라고 추종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역시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긴 자의 궤변입니다. 그 따위 삶을 살면서 자기가 체험한 환상이 진리라고요? 그 종교 사기꾼이 받았다는 계시의 내용도 참으로 코미디 같은 말이라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그 사기꾼의 삶 자체만 보더라도 그의 주장을 들어볼 필요도 없다는 말입니다. 종교 사기꾼 문**이도 조강지처 버리고 새파란 젊은애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러니 그 사기꾼이 받았다는 계시는 일언반구도 들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100% 거짓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제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자신의 삶을 지켜 의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능력 있는 설교 말씀은 설교자의 의로운 삶에서 나옵니다. 강도 살인자가 ‘여러분 이웃을 사랑합시다’라고 한다면 그 말에 무게가 느껴집니까? ‘사랑’이 아무리 좋은 말이라지만 그 강도가 한 말은 코미디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아무리 진리라지만 존경받지 못하는 삯꾼 목사가 하는 설교는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말입니다. 불의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과 성도들을 화해시키지 못합니다. 목회자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격에 의심을 받는 자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직에서 물러남이 마땅합니다. 설사 좀 억울하더라도 교회에 진리와 공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복음전파의 길을 열어야지 좋은 자리 포기하기 아깝다고 끝까지 버텨 복음전파에 부담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종이 취할 태도가 못되지요.

예수께서 진리만 말씀하셨고 그분의 삶이 의로운 삶이었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은 실(實)한 진리입니다. 그분께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인간이 과연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정확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자가 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다 내쫓으셨습니다. 성전의 죄악을 다 쓸어버리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제거된 곳에 임하셔서 인간들을 만나주십니다. 우리 구주 예수께서는 자신을 인간들의 죄에 대한 화목제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을 인간들의 죄를 사하기 위한 속죄제로 드리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그분을 제외한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화목제와 속죄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인간들을 사랑하시어 그들의 죄를 자신이 짊어지시고 모든 책임을 지셨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자들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간질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도 있을까요? 명백히 죄 있는 자들에게 ‘너희들은 죄가 없다’고 말하며 그들로부터 온갖 존경과 섬김을 다 받는 자나, 죄가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를 발할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뭔가를 뜯어내려 하는 자가 여기에 해당하겠지요. 억지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헌금을 강요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방식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화해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사는 가운데 타인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죄 문제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의로운 삶을 사는가입니다. 의로운 삶은 영육의 모든 고통과 고난을 불평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인내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며 타인을 위해 중보기도할 때 하나님과 그 자가 화해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그 자의 마음을 감화하시어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중보기도를 들어주셔서 타인의 죄도 용서해 주시기도 합니다. 여러분,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 자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천국을 유업으로 물려받을 자입니다. 그 자가 진정 예수님의 제자이고, 그 자가 진정 참사랑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여러분이 진리를 말하고, 교회와 가정에서 죄를 제거하고, 의로운 삶을 삶으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자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교(잠22:1) : 명예와 은총  (0) 2012.11.28
설교(시37편) : 소원성취  (0) 2012.11.28
설교(창14:17-20) : 십일조  (0) 2012.11.28
설교(시36편) : 신실하신 하나님  (0) 2012.11.28
설교(딤전6:11-16) : 우리의 관심사  (0) 2012.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