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창14:17-20) : 십일조

stevision 2012. 11. 28. 09:34

 

(2007년 9월 1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십일조                                       English
말씀: 창14:17-20

  

 

>>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출15:6).” 오늘 아브라함(아브람)은 하나님의 강하고 의로우신 오른손을 체험했습니다. 원수 시날 왕, 엘라살 왕, 엘람 왕, 고임 왕이 쳐들어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사로잡아갔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집에서 훈련시킨 장정 318명을 데리고 출전하여 원수를 물리치고 조카 롯도 구하고 전리품도 많이 갖고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원수를 물리친 것을 감사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사시면서 꼭 아브라함처럼 승리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강한 오른손이 여러분들을 굳세게 붙들고,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이 여러분의 원수들을 다 부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승전가를 부르며 전쟁터에서 돌아오자 살렘왕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보러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왔습니다. 살렘은 평화라는 말입니다. 멜기세덱은 평화의 왕입니다. 또한 멜기세덱이라는 말은 ‘나의 왕은 의롭다’라는 뜻입니다. 멜기세덱은 의로운 왕입니다. 멜기세덱은 또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성경은 멜기세덱이 레위 지파의 대제사장 보다 높고, 레위지파의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높은 자라고 합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으므로 그를 축복해줍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19절).” 이에 아브라함이 전리품의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통 십일조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십일조는 하나님의 백성이 원수와 싸워 이겨 전리품을 취하고 그 전리품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린 것에서 유래했군요. 여러분, 십일조는 의로운 제물입니다. 십일조는 승리의 제물입니다. 십일조는 의로운 삶을 살아 승리한 자만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삶을 산 자의 예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불의한 자의 예물을 받으셨다가는 그 자를 벌하시기가 곤란하게 되고, 결국 악인들을 두둔하시게 되는 결과가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자의 제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보아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삶을 살고 있던 가인의 제물을 물리치셨습니다. 여러분, 더러운 냄새나는 십일조를 드리지 마십시오. 정직하게 일해 번 것 중에 십의 일을 떼어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는 감사의 제물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뭔가를 남긴 자만이 십일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소득이 없다면 십일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10억을 가졌더라도 그 달에 소득이 없다면 십일조를 드릴 수 없습니다. 10억 중에서 얼마를 떼어 감사헌금은 드릴 수 있겠지만 본래 의미의 십일조는 드릴 수 없겠지요. 아브라함은 원수와 싸워 승리케 하시고 많은 전리품을 얻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자들이 십일조를 드리고 싶어도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십일조 자체가 얼마나 큰 감격입니까? 여러분, 아직도 십일조가 부담으로 느껴지십니까? 십일조는 의로운 승리를 기념하는 트로피입니다.

십일조는 약속된 하나님의 복을 잃지 않겠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선언하니 아브라함이 이에 감사하여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한 자가 한 사람 있는데 그게 바로 야곱입니다. 계산에 철두철미한 야곱입니다. 얼마나 계산에 빨랐으면 그가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샀겠습니까? 그렇게 철저히 타산적인 인간인 그에게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3-15).” 이렇게 거창한 꿈을 꾼 야곱이 깨어납니다. 즉시 그의 비상한 머리가 아침부터 핑핑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결론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이 꽤 좋은 것이고, 그것을 확실히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계속 맺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조그만 성의를 보여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28:20-22).” 여러분, 애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십일조를 강요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십일조는 인간이 먼저 하나님께 약속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먼저 십분의 일을 자원하여 하나님께 드렸고, 야곱도 일방적으로 자원하여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합니다. 형으로부터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산 구두쇠(?) 야곱이 자기 수입의 십의 일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했을 때 그가 약속받은 복이 얼마나 컸던지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 복을 잃기가 정말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는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난 자만이 드릴 수 있는 겁니다. 십일조는 정말로 지혜로운 자가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복을 약속받은 자가 자원하여 하나님께 약속드린 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십니까? 십일조는 세상의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받겠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후에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제도를 두시고 그것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율법 조항으로 십일조를 두었습니다. 그 십일조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는 자신이 받은 복을 타인과 나누겠다는 마음의 표현도 됩니다. 요즘 사회 양극화가 문제가 화두에 자주 오릅니다. 십일조는 부의 재분배를 지향합니다. 십일조는 성직에 종사하는 자를 먹여살리고, 가난한 자들을 먹여살립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자들도 하나님의 복을 함께 누리도록 해줍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축복과 사랑의 통로가 바로 십일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율법에 규정하여 놓으시고 이를 어길 경우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을 한 것으로 여기시겠다고 하십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말라기서를 통해 십일조 명령에 순종한 자의 복도 약속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아브라함과 야곱 시대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복을 약속받은 일부 특권층 사람만 십일조를 자원하여 드렸지만, 율법으로 그것이 규정된 이후로는 하나님의 복의 평등화가 실현되어 누구든지 감사함으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야곱의 복을 허락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제로 십일조를 규정하신 이상, 인간이 그것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의무적으로 하늘의 복을 주셔야 합니다. 요컨대 십일조는 나를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이 절실히 필요한 자입니다. 십일조는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나를 붙들어매는 끈입니다. 많은 자들이 어리석게도 이 끈을 풀어버리려 합니다. 그러나 계산에 빠른(?) 자는 절대 그 끈을 풀지 않습니다. 그것은 미련한 짓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십일조는 하나님의 종이 있는 곳에 드려야 합니다. 안식일이 하나님의 날이듯 십일조는 하나님의 재물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교회에다 내야하고, 하나님의 종에게 십일조를 냈다는 인정을 받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십일조를 계기로 복 빎을 받아야 합니다. 제멋대로 하나님의 일을 한답시고 십일조를 임의로 사용하면 안됩니다. 이왕이면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복 빎을 받는 방향으로 십일조를 내는 게 좋지 않습니까?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말함이라(사59:1-3).” 여러분, 십일조를 수단으로 삼지 마십시오. 무슨 수단인고 하니 자신의 죄를 덮어줄 보자기로 사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지 않으면서, 남 몰래 혹은 자기 마음속으로 온갖 죄를 다 지으면서 자신을 의롭게 보이기 위해 십일조를 꼬박꼬박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의로움을 인정받기 위해 십일조를 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그들의 그러한 행위가 가증스런 것이라 하십니다. 뒤에서 온갖 죄를 범하며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십일조를 하면 사람들에게는 칭찬 받을지는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자의 십일조를 받지 않으십니다. 교회 헌금 기록부에는 십일조를 냈다고 되어있겠지만 하나님의 마음에는 처음부터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이름입니다. 아무리 꼬박꼬박 십일조를 내어도 행동이 불의하면 그 자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고, 그자에게서 얼굴을 돌리시고, 그 자가 곤궁에 처해도 하나님께서 손을 내미시어 구해주시지도 않습니다.

혹자는 말라기 3장 10절 말씀을 들어 십일조만 잘 하면 무조건 재물의 복을 받을 거라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십일조는 받은 복의 십분의 일을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불의한 삶을 사는 자가 복받은 자입니까? 불의한 삶을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구원과 도움의 손길을 베푸셔서 소득이 있게 하셨다고 보십니까? 불의한 삶은 하나님과 무관한 삶이고, 그러한 삶을 산 자의 소득은 악한 것이므로 거기서 십분의 일을 내어도 그것은 본래의 십일조가 아닙니다. 그러한 십일조는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복을 낚기 위한 미끼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물고기이십니까? 착각하지 마세요. 아브라함의 삶과 마음으로, 야곱의 삶과 마음으로 드리는 게 바로 십일조입니다. 의로운 삶을 살며 드리는 십일조가 진짜 십일조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정확한 액수를 떼어 바쳤더라도 불의한 삶을 살며, 아브라함과 야곱의 마음이 없이 아깝다는 생각과 괴로운 마음으로 드리는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먼저 복을 받으십시오. 먼저 영과 육에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복을 받지 않고,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복을 받지 않고 십일조를 드리면 헛수고입니다. 십일조는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먼저 받은 것을 감사함으로 드리는 게 십일조입니다. 그러니 외형적 십일조 생활도 중요하지만 나와 하나님과의 사랑과 신뢰의 관계와 내가 받은 복을 이웃과 나누려는 사랑의 마음이 내게 먼저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십일조는 나에게 장래의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지속시키는 수단입니다. 그러니 불의한 삶을 살며 십일조를 내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짓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복을 신뢰하며,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여 깨끗하고 의로운 삶을 살며, 오늘 그분께 받은 복의 십의 일을 그분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 나의 사랑을 더욱 돈독하게 합니다. 십일조의 목적은 하나님과 나의 변함없는 사랑과 신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롭고 강한 오른손으로 나를 붙드시고 나는 십일조로 나와 그분을 묶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가운데 아브라함과 야곱의 복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