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37편) : 소원성취

stevision 2012. 11. 28. 09:38

 

(2007년 9월 8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소원성취                                         English
말씀: 시37편

  

 

>> .... 3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 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 16 의인의 적은 소유가 많은 악인의 풍부함보다 승하도다. 17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18 여호와께서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시니 저희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19 저희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 ... 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 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 <<

정말로 불쌍한 자들이 바로 악인들입니다. 성령께서 멀리하시는 악인들은 자신 외에 자기를 도울 자가 없습니다. 악인은 잡초와 같은 인생입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1, 2절).” 여러분, 잡초는 좋은 때 만나 무성하게 자랐다가 다른 과일나무에게 해가 될 정도가 되면 그냥 잘리게 되는 존재입니다. 잠깐 기세등등해 하다가 밑이 잘린 풀처럼 시들어 죽는 인생이 바로 악인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존재가 바로 악인들입니다. 우리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악의 열매를 좋아하는 것이어서 의로우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솔직히 저는 황제와 같은 생활을 하는 재벌총수나 그 자식들이 절대 부럽지 않습니다. 저는 탐욕스런 목회로 중세 교황처럼 떵떵거리며 자신만만하게 사는 자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절대로 부럽지 않습니다. 인생은 풀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인간의 최대 수명을 건강하게 살았던 자입니다. 그가 120세를 살았습니다. 모세가 지은 시편이 유일하게 하나 있는데 시편 90편이 바로 그의 작품입니다. 그가 인간의 삶에 대해 한 마디 합니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시90:5).” 짧은 인생 악인이 제아무리 세상의 낙을 누리며 살았다 한들 영원한 형벌을 생각하면 얼마나 초라한 낙입니까? 장수를 하며 세상 복을 누린 악인이 있더라도 그 자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불쌍히 여김의 대상입니다. 하물며 의인을 괴롭히다 속히 베임을 당해 시들어 죽는 악인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여러분, 영원을 생각하십시오. 영원을 생각하며 무조건 참고 무조건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의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의인은 그분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계명을 사랑하여 지키는 자입니다. 의인은 자신의 죄와 과오를 마음아파하며 용서를 구하는 자입니다. 의인은 이웃을 사랑하며 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자입니다. 의인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분에게 감사해 합니다. 무엇보다 의인은 자신이 받은 해를 하나님의 불성실함 탓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성경 말씀을 보면 의인은 꾼 것을 갚을 뿐만 아니라 은혜를 베풀고 주는 자입니다(21절). 의인의 삶은 악에서 떠나있고 선을 행합니다(27절). 여러분, 이러한 의인이 되십시오. 세상에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가 있습니다.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22절).” 여러분, 살기 좀 힘들다고 악한 길, 넓은 길, 많은 자들이 가는 길을 가지 마십시오. 그 길은 저주받은 자들이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 삶이 아무리 고되더라도 의의 길, 좁은 길, 복받은 자들이 가는 길을 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의인들에게 여러 신령한 복들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땅을 차지하게 하는 복을 주십니다. 악인은 속히 베임을 당하는 풀과 같습니다만 의인은 평화를 누리며 땅을 차지하고 삽니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고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11절).”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팔을 부러뜨리시지만 의인은 당신의 강한 팔로 굳세게 붙들어 넘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17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24절).”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악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하시지만 의인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기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그 칼은 자기의 마음을 찌르고 그 활은 부러지리로다(14, 15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23절).”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 살 때 여러분의 인생길은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 길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길이지요. 이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자손이 비참한 꼴을 당하게 하시지만 의인의 자손은 갈수록 번창케 하십니다.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28절).”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25, 26절).”

여러분, 의인에게는 이처럼 아름다운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작은 믿음과 잦은 불평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광야로 나왔을 때 그들은 시시때때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급기야 하나님께서도 불평(?)을 늘어 놓으셨습니다. “얘 모세야, 도대체 저 인간들은 그렇게 내가 행한 기적들을 보고서도 저 야단들이냐? 참으로 마음이 온유하지 못하고 빳빳한 백성이구나.” 그래서 오늘 본문 성경 말씀은 말합니다. “오직 온유한 자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11절).” 실제로 당시 이스라엘의 성인들 중에 하나님의 약속을 아멘으로 받아들인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살며 안식을 누렸습니다. 그 둘은 애굽에서의 고된 노예 생활과 광야에서의 방랑생활이 주는 모든 괴로움을 이기고 약속받은 땅에 들어가 평안히 살다 생을 마쳤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온유한 자는? “믿습니다. 아멘!”하고서 더 이상 아무런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 자입니다. 온유한 아내는 바다와 같이 넓은 남편의 사랑을 차지하고, 온유한 자식은 한없는 아버지의 사랑과 부유함을 차지합니다. 온유한 사원은 회사 전체를 통째로 차지할 날을 맞게 됩니다. 선한 마음으로 나라를 살려보겠다고 마음먹은 온유한 정치인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날을 맞게 됩니다. 목회자가 교인 몇만, 몇십만 소유했다고 하나님 나라에서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한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을 과연 누구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냐가 중요합니다. 그 자가 진정 하나님의 교회의 땅을 차지한 자입니다. 루터는 전 세계 기독교를 수백년 간 다스린 자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이천년 간 교회를 다스린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이 남긴 말들을 통해 교회를 다스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탐욕을 멀리하는 온유한 목사님들을 통해 이 시대의 교회들을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그 목사님들이 작은 교회를 담임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올바로 전한 자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가진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장애인 송명희 평신도가 한 이 짧은 설교는 한국의 몇몇 탐욕스런 개신교 교황들이 한 모든 설교보다 더 많은 감동과 교훈과 영향을 성도들에게 주었습니다. 비록 송명희 선생은 하나님께 성직자로 부름받은 적도 없고 사람들에게 성직자로 세움받은 적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과 그의 신앙을 통해 이 시대 대한민국 기독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선지자의 말을 하게 하셨습니다. 장애의 고통 가운데에서도 온유한 맘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린 송명희 선생이 조**, 김**, 김**, 김** 이 네 기독교인들이 차지한 땅(교회) 전체보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네 기독교인들은 남은 생애라도 겸손해질지어다! 송명희 선생의 저 설교 덕분에 그나마 당신네들 교인들이 정신차려 지옥 가는 것을 면하게 된 것 아시오? 하늘나라에서 송명희는 큰 자이고 나머지 네 사람들은 지극히 작은 자들입니다. 입으로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천박한 삯꾼 목회자들이여, 송명희 선생을 본받으시오. 성직자의 제일 큰 치욕은 삯꾼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고, 성직자의 제일 큰 영광은 한 시대에 꼭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했다는 것입니다. 성직자는 참된 말씀과 삶으로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너무 우습게 보지 마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김선도씨를 비롯한 몇몇 탐욕스런 자들의 교회세습 문제를 방치하셨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분께서는 이미 성도들에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양심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고 탐욕에 눈이 멀어 그 모양인데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함께 하셔서 간섭을 하실 맘이 있으시겠습니까? 그 진흙탕 싸움에 하나님께서도 한 후보 지지하시며 나서시란 말입니까? 그러시다가 하나님께서 지지하시는 후보가 탈락되기라도 하면 하나님 체면(?)이 어떻게 됩니까? 교회 분위기를 보니 100% 하나님께서 지지하시는 자가 탈락될 게 분명한데요. 교회는 자생력이 있어서 몇몇 삯꾼 목사가 있더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바이러스들 덕분에 교회가 면역력이 더 길러져 더욱 강해집니다. 탐욕스런 성직자의 삶은 그 자체가 자신에게 형벌입니다. 그 자는 기독교 역사에서 영원히 더러운 이름을 남기고 죽게 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로다(4절).”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러면 네가 여호와의 기쁨이 되리라”라고 한다면 자동적으로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진 게 되겠군요.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몸 건강하고 돈 많이 벌어 떵떵거리며 사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는 것을 여러분의 평생소원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여러분의 소원을 차원 낮은 돈과 건강에 두지 않고 좀 더 고차원적으로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으로 정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생명수 강가에다가 심어 놓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사시사철 시들지 않고 때를 따라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교훈을 마다하고 다른 데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다 실패하고 하나님만 원망합니다. 예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이것을 실천하는 자가 진심으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눈을 지그시 감고,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다 주듯 복을 자루에다 담아 오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기뻐하는 게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기뻐함은 하나님을 사랑함과 다를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함은 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것과 다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기를 좋아하는 자는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소원을 이룹니다.

사람의 취향도 하나님께서 조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물리가 좋았는데,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느라 시간이 없었는데도 영어에 많은 관심이 생겨 영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더군요. 대학 졸업 후에 신학을 하게되니 물리에 대한 호감도가 팍 시들어버리더군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물리, 수학, 영어가 다 제게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우리의 소원과 취향이 항상 고정되어 있지 않고 바뀔 수 있는데, 하나님 안에 사는 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꼭 필요한 방향으로 이리저리 그 방향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취향이나 소원과 다르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방향으로 가게 하시면 그 방향으로 순종하여 갑니다. 이 때 성령께서 그 자의 마음에 임하시어 취향과 소원이 새로운 방향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 자는 신천지(新天地)를 만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소원성취를 하고 나서 쓴 시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소원은 자신을 괴롭히는 악인들이 사라지고 왕이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여러분이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시어 소중한 소원을 주님 안에서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