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잠22:1) : 명예와 은총

stevision 2012. 11. 28. 09:40

 

(2007년 9월 8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명예와 은총                                       English
말씀: 잠22:1

  

 

>>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그냥 그렇게 산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신도 명예를 지키며 살고싶은데 도저히 사정이 그렇지 못해 그냥 살아남기 위해 불법도 저지른다는 자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에게 그러한 인생관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요?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을 벌기 위해 신앙 양심을 버릴 수 있습니까?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천국에 간 거지 나사로를 생각하면 우리가 생존을 위해 죄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거지 나사로는 남몰래 죄를 범하면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한 선지자입니다. 나사로가 맘만 먹었다면 극단적 수단을 통해서라도 돈벌어 먹고살 수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 남자도 몸팔고, 젊은 여자도 몸팔아 돈벌어 살아남은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보다 더한 죄를 범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차라리 남의 집 대문에서 구걸하며 살지언정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천국에 갔던 것입니다. 그는 먹는 게 부실하여 몸이 점점 허약해져 병들어 죽은 자입니다. 나사로를 인간취급하지 않았던 부자는 아마 너무 잘 먹어서 성인병으로 급사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는 지옥에 갔고 나사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어거스틴이 과거 자신의 문란했던 생활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끊지 못하고 있을 때 ‘주어 읽으라’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성경을 들어 펼쳐 읽었는데, 그게 바로 로마서였고, 그 내용은 음란을 비롯한 모든 더러운 행실을 버리고 깨끗한 새 삶을 살라는 거였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를 따라 그대로 행하여 자신의 모든 더러운 과거의 삶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 기독교 세계의 기둥과 같은 자가 되었습니다. 저의 신앙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목소리도 어린 아이의 목소리였습니다. 고 3 여름방학 때 제가 점심 때 쯤 교회 안에 있었는데, 밖에서 아이들이 떠들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말 가운데 어느 한 아이의 말이 제 귀에 들어왔습니다. “주일에는 일하지 않는대.” 이 말이 제 마음에 꽂혔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주일에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주일에 할 일이 정 없으면 그냥 푹 쉬었습니다. 대학 때 기독교 써클에 들어가서 주중에도 엄청나게 시간을 많이 뺏기고, 교회의 청년부 예배를 포함해 수요 예배와 주일의 모든 정규예배도 빠짐없이 드려서 공부할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도 주일에 절대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주일날 공부 안 해서 엄청나게 손해 봤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저의 결연한 신앙태도가 제게 많은 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주일에 제 자신의 일을 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모든 장래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게 되더군요.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하자!’ 여러분, 어설프게 신앙생활하며 반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게 되면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아예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시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비로소 강 같은 평화가 임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했던 것은, 제 어떤 친구는 한달 전부터 미리미리 엄청나게 공을 들여 시험을 준비하고도 시험지를 받으면 앞이 깜깜해지고 지금까지 외웠던 게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고 제게 불평을 늘어놓더군요. 그런데 저는 시험 전날 부랴부랴 요약 준비하여 같은 시험을 봐 A+를 받았습니다. 물론 이는 특별한 경우이고 이런 저런 이유로 저는 D0에서 A+까지 학점의 폭이 매우 넓습니다. 인격의 폭이 그만큼 넓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저는 F는 단 한번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세월을 아껴야지요.)

여러분, 신앙은 한 순간의 결단입니다. 결단을 내리십시오.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우리는 먼저 돈보다 명예를 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명예와 건전치 못한 체면을 혼동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자기가 양반입네 하고 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처자식들 쫄쫄 굶긴 적이 있습니다. 돈 버는 것을 천히 여긴 죄로 많은 고생을 한 것이지요. 세상에서 정말 귀한 일은 열심히 일해 처자식 먹여살리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거룩한 사명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불의한 재물을 얻기 위해 양심을 팔지 말라는 말입니다. 명예는 영광스런 이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러나 발람은 많은 재물을 따라가려다 나귀만도 못한 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를 보세요. 그가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쳐주었고 그에게 선물을 받아도 그리 흠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그것을 받으면 여러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끝까지 나아만의 선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뭘 받으시기보다는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에서 기쁨을 누리시는 분임을 이방인 나아만에게 알려 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이 엘리사로부터 병고침을 받고 가져온 온갖 귀한 물품을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에게 답례로 주었다면 그에게 더 이상 하나님께 감사드릴 이유가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값을 지불했으니 관계가 끝났다는 말이지요. 물건값을 치르고서도 여전히 상점 주인에게 고맙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까? 값을 지불하면 자유로운 자가 됩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엘리사는 하나님의 명예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먼 길 찾아온 나아만에게 은혜만 베풀고 대가는 받지 않는 것이 이스라엘의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높이는 효과가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인들 같으면 얼싸 좋다 하고 선물을 받았을 터인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사는 그 좋은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하자 나아만이 이를 기이하게 여겼고 엘리사의 하나님을 자기 신으로 섬기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나아만이 봤을 때 분명 엘리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뭘 받으시기보다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나아만이 황송해 하는 태도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이게 다 돈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한, 속깊은 하나님의 종 엘리사의 작품입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인은 돈보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돈을 받아야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겠다는 목회자는 반성해야 합니다. 어느 도시 기독교 연합회에서 유명한 부흥회 강사 목사를 초빙하여 연합부흥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런데 그 강사 목사는 무리하게 교회를 크게 지어놓고 큰 빚더미에 앉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웃기는 일은 이 강사 목사가 부흥회 설교 전에 실행부 목사님들에게 사례비 흥정을 했는데, 주최측에게 힘에 겨울 정도의 금액을 요구하더라는 겁니다. 그렇게라도 돈을 벌어야 교회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봅니다. 돈이 웬수입니다! 예수께서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돈을 벌 목적으로 성직자가 병을 고쳐주거나 축복기도 해주면 안됩니다. 성직자나 평신도나 하나님의 명예를 생각해야 합니다. 돈을 받아 하나님의 명예가 훼손된다고 판단되면 그것을 받으면 안되지요. 우리 기독교인이 지켜야 할 명예는 바로 ‘돈보다 하나님의 명예를 생각하며 산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돈을 벌려고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먹는 평신도나 성직자는 정말 치욕적인 인간입니다. 기독교인 딱지를 달고 세상 사람들의 돈을 떼어먹거나 사기치면 안됩니다. 그런데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 선지자 사무엘을 도움을 청하러 찾아갔을 때 약간의 예물을 준비해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의 종이 그것을 함부로 거부하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왜냐하면 평신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알고 하나님의 종에게 예물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사로운 예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무슨 권한으로 그 제물에 퇴짜를 놓습니까? 따라서 혹시 교회에서 아주 가난한 평신도가 큰 예물이든 작은 예물이든 하나님의 종에게 드리면 하나님의 종은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받고 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엘리사의 경우 이방인이었던 나아만의 선물을 사양함이 나아만의 신앙을 더 견고케 하고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 한 것입니다. 사무엘의 경우는 이와 사정이 다릅니다.

우리가 돈보다 명예를 더 사랑할 때 우리는 열심히 벌어놓은 돈을 가지고 선한 일에 사용합니다. 여러분의 돈이 여러분을 선한 자로 만들어 여러분의 명예가 자손 천대까지 미치게 하십시오. 귀한 향유를 예수께 부어드린 여인처럼 우리는 우리의 재물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데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데 여러분의 재물을 많이 쓰면 여러분의 이름은 세상에서도 하늘나라에서도 영예로운 이름이 됩니다. 역사를 보면 기근 때 사람들이 굶어죽는 상황에서 자신의 사재를 털어 많은 자들의 목숨을 구한 선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가 돈보다 명예를 더 사랑한 자입니다. 여러분 중에 해외 선교사님들에게 많은 후원금을 대주시는 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께서 돈보다 명예를 더 사랑하면 그게 가능합니다. 영예로운 이름은 우리의 영원한 면류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사랑하라”는 교훈을 줍니다. 은이나 금은 누구나 다 아는 것들이고,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은총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은총이란 ‘나에 대한 호감도’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은총은 grace라기보다는 loving favor입니다. 엘리사의 경우를 다시 생각해보지요.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가 자기가 제공하는 선물을 사양했을 때 그에 대한 굉장한 호감을 갖게 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구두쇠보다는 넉넉하게 베풀 줄 아는 자에게 더 큰 호감을 가집니다. 사람들은 돈보다 명예를 더 중시하는 자에게 더 큰 호감을 가집니다. 사람들은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이 후히 넣어주는 상점 주인에게 더 큰 호감을 가집니다. 사람들은 낮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자에게 더 큰 호감을 가집니다. 사람들은 빚을 면제해 주는 자에게 더 큰 호감을 가집니다. 사람들은 번 돈을 사회에 기부하는 자에게 더 큰 호감을 가집니다. 사람들은 이익을 사원들과 함께 나눌 줄 아는 사장에게 더 큰 호감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사랑하라는 말씀은 돈 문제로 나에 대한 타인의 호감이 달아나게 하지 말라는 말이고, 나에 대한 타인의 호감이 증대하는 방향으로 재물을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이런 자들은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생각지도 않은 도움을 받기도 하고, 인격이 좋은 사람으로 점점 소문이 나서 선거 때 좋은 자리에 당선되기도 합니다. 돈을 멋대로 사용하여 타인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이렇게 돈을 사용하여 타인의 인심을 얻으면 얼마나 지혜로운 자입니까? 우리가 금이나 은보다 나에 대한 호감을 더 사랑한다면 진정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불법적 경제행위를 하지 않게 됩니다. 누가 불법을 저지르는 자에게 호감을 가집니까? 사람들이 우리에게 많은 호감을 갖고 존경하면 하나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호감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하나님의 호감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호감보다 금이나 은을 더 사랑하는 자는 죄를 지으면서까지 돈을 긁어모으려 할 것입니다. 호감보다 금을 더 사랑하는 자는 가난하게 살 때 하나님을 원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보다 금보다 은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도록 더욱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적, 물질적 복보다 영적인 복을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1억짜리 수표보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을 더 사모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기도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을 보며 우리는 더욱 기뻐해야 합니다. 1억짜리 수표보다 하나님의 계명이 더 귀해보여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여러분의 재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돈이나 금보다 명예와 은총(타인의 호감)을 더 사랑할 때 재물이 우리에게 복이 되며 그 재물로 인해 내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한 자가 됩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재물관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바른 재물관을 견지하시어 하나님께 인정받고 더욱 큰 복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