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사43:1-7) : 사랑의 하나님

stevision 2012. 11. 29. 11:12

 

(2007년 11월 17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사랑의 하나님                                       English
말씀: 사43:1-7

  

 

 >>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

사람이 중병에 들면 ‘아! 도대체 언제 이 병이 나아서 이전처럼 건강한 상태로 뛰어다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전에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로 있었을 때에 우리 선조들은 ‘언제 해방이 되어 자유를 누리며 사나?’ 자나깨나 그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을 꽁꽁 묶어놓는 것들이 많습니다. 병, 가난, 빚, 감옥, 실직, 등등 우리를 괴롭히는 속박들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절망하여 꿈을 포기합니다. 이스라엘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정복당해 포로로 잡혀간 후 수십 년이 지나도 이스라엘이 해방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포로 1세대는 거의 다 죽고 2, 3세대가 있어 거의 이방인이 다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걸까요? 그 옛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택하셔서 영원한 장래를 약속하셨던 하나님은 어디 계시며 애굽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단 말입니까? 지금까지 오랜 세월 야곱의 하나님께 기도드렸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제 기도도 소용없는 것이 되었단 말인가!

그러나 이제 이제 어둠이 걷히고 서광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1절).” 그야말로 ‘이제’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백성에게 가급적 빨리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셨지만 여러 사정상 그러실 수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징벌을 받은 이스라엘에게 냉각기가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에서 포로생활 하며 옛날의 자신들의 죄악을 기억하고 새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70년 정도 이스라엘이 이방 땅에서 종살이해야 비로소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이 430년 간 남쪽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난 후 출애굽을 한 것은 첫 번 째 탄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70년 간 북쪽 바벨론에서 종살이하다 해방이 된 것은 이스라엘이 거듭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 70년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의 껍질들이 하나 하나 벗겨지는 것을 보시고 계셨습니다. 때론 당신의 백성이 울부짖으며 구해달라고 애원했지만 하나님께서도 마음은 안쓰러우셨지만 꾹 참고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그 기간은 하나님께도 고통이었습니다. 때가 되고 때가 차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의 얼굴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먼저 나서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이끄십니다. 그 오랜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도움이 너무 늦다고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걱정하시는 게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당신의 백성이 그분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엄한 심판을 보며 ‘무자비한 하나님’, 그분의 오랜 침묵을 보며 ‘무정하고도 무심한 하나님’이라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자신들을 돕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무능한 분’으로 치부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신 분이라 그들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시라고 당신 자신을 변호하십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특히 우리가 고난의 길, 눈물의 길을 갈 때 함께 그 길을 가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2절).” 이 말씀은 미래의 약속만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이었고 현재의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백성들을 밀착경호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믿음의 눈이 떠진 자들은 언제나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가는 그 길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그들을 지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장차 당신의 백성을 이끌어 나오실 때도 그들과 동행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언제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두려워 말라(1절, 5절)”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고난의 길을 함께 가시고 계심을 믿으시고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분께서 지금 여러분을 복된 길로 인도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무자비한 하나님이나 무정한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십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4절).” 사랑 중에 제일 순수하고 강한 사랑은?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자식들을 사랑할 때의 사랑이지요. 그보다 더 강하고 순수하며 자발적인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런 사랑을 품고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6절).” 하나님께서 지금 ‘아들’과 ‘딸’을 말씀하시네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왕으로서 백성을 대하시기도 하시지만 지금은 아버지로서 아들이나 딸에게 대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아버지와 자식간의 관계는 모든 죄악을 다 극복하고 화해가 되는 관계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아버지는 자식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자식이 아무리 죄를 지어 타인에게 큰 해를 끼쳤더라도 아버지는 자식의 죄에 대한 연대책임을 지고 피해를 보상합니다. 자식이 아무리 큰 죄를 지어 감옥에 갇혔더라도 아버지는 어떠한 값을 치르고서라도 그 자식을 석방시키려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와 같이 자식으로 여기시기 때문에 그들이 죄를 지어 잠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들을 무슨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그들을 구출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3, 4절).” 즉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고 있는 강대국에게 다른 나라들을 대신 주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겠다고 하십니다. 쉬운 말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빼내오시기 위해 다른 죄 진 백성들을 대가로 지불하시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죄인들이 비참한 것은 그들이 의인을 대신하여 화를 당하거나 죽는다는 겁니다. 죄인들이야 그게 바로 자신들의 죗값이라 억울한 일은 아니지만 의인들은 그들 덕분에 화를 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의인들이 당할 자리에 악인들을 세워두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잘나고 의로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스런 자녀로 보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통 구약은 엄하신 하나님, 신약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구약의 하나님도 역시 당신의 자녀들에게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시라면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심이 미워서였겠습니까 아니면 자식 잘 되라는 심정으로 회초리로 때리신 겁니까? 당연히 자식 잘 되라고 그러신 것이지요. 그리니 이스라엘이 과거에 하나님께 심하게 맞은 것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과 앙심을 품어서는 안되지요. 하나님이 보기 싫다고 멀리 달아나면 안되지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실 때 우리가 더욱 그분을 공경해야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버리시고 그분을 더욱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을 아직 안해주신다고 그분께서 무능한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밤낮으로 간구해도 70년이 다 되도록 해방을 안 시켜 주신 것이 그들을 포로로 잡고 있는 나라보다 약하시기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야곱아 나는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라(1절)”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능력이 얼마나 큼은 강대국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나라를 세우게 하신 데에서 알 수 있습니다. 보통 나라가 부흥하면 사람들이 나무나 돌을 다듬어 신을 만들어서 그 신을 앞세워 이웃 나라 정복에 나섭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참 신이신 하나님께서는 강대국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약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신이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10 가지 재앙을 맘대로 내리시고 바다가 갈라지게 하시고 애굽 군대를 바다에 수장시킬 능력이 있으신 살아 계신 신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자식으로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능력있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권력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나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은 다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도끼가 어찌 도끼를 손에 쥔 자에게 자기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바벨론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도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3절).” 하나님께 귀한 것은 이스라엘이었지 도끼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도끼를 손에 쥔 분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거룩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분께서 작정하시면 그게 바로 장래의 사건이 됩니다. 역사는 그분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셔서 사방에 흩으셨던 그분께서 이제 반대 방향으로 역사의 길을 정하셨습니다. 이제 땅 끝에 있는 이스라엘인이라도 다시 본국으로 불러들이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뒤에 숨겨놓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리라(5, 6절).” 여러분의 처지가 아무리 깊은 수렁과 같은 곳이더라도, 여러분께서 지금 아무리 평안과 행복에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곳으로부터 여러분을 이끌어 내셔서 그분 곁에 두십니다. 평화의 안식처에 여러분을 두십니다. 이제 오랜 기간의 눈물을 닦으시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십시오. 능력 많으신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여러분의 구원자께서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분이십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너는 내 것이다’ 할 수 있나요? 그 말이 아들이나 딸에게 해주는 말로 어울리나요? 약간 어울리지 않지요?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애인에게 ‘너는 내 것이다’라고 하면 굉장히 좋은 말이지요. 누구나 사랑하는 자에게 ‘너는 내 것이다’라는 소리를 듣고싶어합니다. 너는 내 것이라는 말은 너와 나는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는 내 것이다(1절)’ 말씀하십니다. 설마 하니 하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때 이스라엘을 물건으로 생각하시고 하셨겠습니까? 그게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하실 때 ‘너는 내 애인이다’라는 의미로 하신 겁니다. 이처럼 구약의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신부처럼 생각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각자를 향하여 ‘너는 내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면 그분께서 질투하십니다.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고 분명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이제’ 세상을 향한 헛된 사랑을 버리시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만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분께 순종하십시오. 여러분도 그분께 마음을 드리고 사랑을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저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속박을 풀어주시며,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희락의 동산으로 인도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