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49편) : 구원해주시는 하나님

stevision 2012. 11. 29. 11:22

 

(2007. 12. 1. 동아 시사 발언대)

 

제목: 구원해주시는 하나님                                           English
말씀: 시49편

  

 

- 표준새번역 성경 -
>> .... 5 나를 비방하는 자들이 나를 에워싸는 그 재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리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들과 6 돈이 많음을 자랑하는 자들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리오. 7 아무리 갑부라 하여도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속량하지 못하는 법, 하나님께 속전을 지불하고 생명을 속량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8 생명을 속량하는 값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아무리 벌어도 마련할 수 없는 것. ... 10 누구나 볼 수 있다. 지혜 있는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자나 우둔한 자도 모두 다 죽는 것을! 평생 모은 재산마저 남에게 모두 주고 떠나가지 않는가! 11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여 제 이름으로 등기를 해 두었어도 그들의 영원한 집, 그들이 영원히 머물 곳은 오직 무덤뿐이다. 12 사람이 제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 멸망할 짐승과 같다. .... 15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내 목숨을 건져주시며, 스올(죽은 자들의 세계)의 세력에서 나를 건져주신다. .... 18 ... 비록 사람이 이 세상에서 흡족하게 살고 성공하여 칭송을 받는다 하여도 19 그도 마침내 자기 조상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 <<

옛날 개역성경을 보니 의미 전달이 너무 안되게 번역을 해놓아서 표준새번역 성경을 사용했습니다. 다른 나라 성경과 대조해보니 비교적 잘 번역을 해놓았더군요. 표준새번역 없으신 분들께서는 조속히 구입하시어 보시는 게 신앙생활에 좋을 겁니다. 성경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먼저 파악하는 게 성경 해석의 첫걸음입니다. 배부른 돼지냐 아니면 배고픈 소크라테스냐, 이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음란과 방탕 가운데 사는 자들이 있지요. 이런 자를 돼지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조금만 생각해 본 자라면 그런 천박한 삶을 지지하지 않을 겁니다. 반대로, 실제 소크라테스가 배를 곯으며 살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하여튼 학문을 귀히 보고 윤리와 도덕을 중시한답시고 일할(?)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아 쫄쫄 굶으며 양반노릇 하는 자들도 가끔 있습니다. 이름하여 배고픈 소크라테스이지요. 이런 삶도 건전하지 못합니다. 물론 배가 고프더라도 맑은 정신으로 모든 것을 감사하며 기쁘게 살면 그것도 괜찮은 삶이지요. 하지만 남에게 민폐 끼치며 구걸하며 철학자 노릇 하는 것은 좀 생각해볼 일입니다. 대체로 둘 다 건전한 삶은 못되지만 그래도 기어코 하나를 선택하라 한다면 죄를 덜 짓게 되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지 않을까요?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재물의 많고 적음이나 학식의 높고 낮음 자체를 인생 성공의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만민아, 이 말을 들어라. 이 세상에 사는 사람아 모두 귀를 기울이라.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모두 귀를 기울여라(1, 2절).” ‘귀를 기울여 사는 삶’, 즉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삶’,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치는 가치 있는 삶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성(理性)을 부여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세상에 대해,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살아야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실천하며 사는 자들이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이 자기를 노예로 팔아 고생했으나 그가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고 딱한 처지에 있는 형들을 생각하여 얼마나 아름다운 생각과 행동을 합니까? 어리석은 삶을 피하고 지혜와 명철을 마음에 품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理性)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즉 인생 무턱대고 살지 말고 생각을 좀 하고 살자는 말입니다. “내 입은 지혜를 말하고, 내 마음은 명철을 생각한다(3절).”

본문 성경 시편 49편 기자는 인생을 깊이 생각하여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을 전하여 줍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먼저 ‘자신의 생명을 구원할 자가 없다’입니다. 물론 이 땅에서 잘못하여 감옥에 갔으면 자기가 벌어놓은 재물로 벌금이나 석방 대가의 돈을 내고 풀려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생명은 죽음과 관련된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른 자가 돈을 내고 죽음의 세계(스올)에서 그를 풀려나게 할 수 있습니까? 어림도 없지요. 그러면 자기가 번 돈으로 스스로를 죽음에서 풀려나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역시 불가능합니다. 또 자기가 번 돈은 죽자마자 남의 것이 되고 맙니다. “아무리 갑부라 하여도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속량하지 못하는 법, 하나님께 속전을 지불하고 생명을 속량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7절).” “평생 모은 재산마저 남에게 모두 주고 떠나가지 않는가!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여 제 이름으로 등기를 해 두었어도 그들의 영원한 집, 그들이 머물 곳은 오직 무덤뿐이다(10, 11절).”

여러분! 지혜로워지기 원하십니까? 먼저 죽음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재물은 여러분의 생명을 영원히 보장할 수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무턱대고 재물을 쌓아놓기만 하는 것은 제일 미련한 짓입니다. 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그냥 구두쇠 노릇 잘 하다가 죽으면 이처럼 미련한 짓이 또 없습니다. 재물을 쌓아놓으면 저절로 건강하고 저절로 장수할 거라는 생각은 착시현상일뿐입니다. 재물을 선용(善用)하는 자가 지혜롭습니다. 미리 자신의 죽음을 생각한다면 재물을 무턱대고 쌓아만 놓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남 좋은 일 하고 세상 떠나지 않습니다. 죽음을 생각한다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동안 재물을 선용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할 자가 없으므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않고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돈이 많음을 자랑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영원히 짐승처럼 멸망할 자입니다.

시편 49편 기자는 인간생명의 절대가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속량하는 값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아무리 벌어도 마련할 수 없는 것(8절).” 성경 기자는 모든 인간들이 다 죽어 절대로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올 수 없는 것을 보며 인간생명의 절대가치를 발견합니다. 즉, 세상의 모든 재화(財貨)를 가지고도 어느 한 사람의 생명, 아니, 어느 한 벌레의 생명조차도 죽음에서 생명으로 돌이킬 수 없음을 그는 발견합니다. 여러분, 이 생명의 절대가치를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생명은 귀한 것입니다. 생명은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만 죽일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이 살기 위해 가축을 잡아먹는 것은 적법한 것입니다. 그러나 장난삼아 생명을 해치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부족한 거지요. 인간의 생명이 그렇게도 귀하건만 어느 나라에 보니 유괴해서 장기를 적출해 팔아 돈 버는 자들이 있고, 순간의 쾌락을 위해 여자를 강간하고 들켜 감옥에 갈까봐 아예 그 여자를 죽여버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생명을 경시해도 도가 너무 지나칩니다. 우리는 타인의 생명을 귀중히 보고 자비롭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인간의 생명의 귀중함과 인간의 무능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귀중하나 인간 자신은 그 생명을 영원히 유지할 자격도 능력도 없음을 그는 깨닫습니다. 이게 지혜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자는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자신의 무능을 아는 자는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가장 확실히 자기에게 영생을 주실 분을 찾아 나섭니다.

시편 기자는 무능한 자기를 구원해주실 분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내 목숨을 건져주시며, 스올의 세력에서 나를 건져주신다(15절).” 스올의 세력은 신약성경 언어로 말하자면 영원한 지옥입니다. 물론 스올은 죽은 자들이 있다고 믿어지는 지하 죽음의 세계를 두고 말한 거겠지요. 구약 성경 시대의 사람이지만 이 시편 기자는 죽음 이후의 부활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 부활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그는 고백합니다. 무능하여 영원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지혜로운 사고(思考)의 결과입니다. 물론 그런 깨닫는 지혜를 하나님께 받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에는 깨달을 능력이 있는데도 진리를 생각하기를 게을리하여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본문 시편기자는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서만 인간들을 구원하실 수 있으시고, 실제로 그분께서 그런 계획을 갖고 계심을 그는 깨달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시라면 그분께서 당신께서 지으신 생명체들을 사랑하시고, 특히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인간들에게 영생을 주실 것을 그가 깨달은 거지요. 자식을 둔 부모의 경험을 한 자라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구원해주실 것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무능한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고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듯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능한 인간들을 사랑하시고 돌보시고 좋은 것 영생을 주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에 그냥 재미로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은 하지 않았었습니다. 홍 선생님께서 저를 전도하셔서 교회에 나간 후 하나님께서 계신 것이 그냥 믿어졌고 그래서 교회를 나가게 된 것이지요. 그렇지만 제가 정말로 하나님의 존재를 실감한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 공중에 나는 티끌을 생각하고부터였습니다. ‘저 티끌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저것을 만드신 창조주가 분명 계신다!’ 제 자신을 생각해 볼 때에도 저는 제 스스로 존재하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정말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한 시기가 바로 그 때였습니다. 우리가 자신과 세상을 곰곰이 생각하면 정말 중요한 진리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인간들을 구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발견한 진리는 바로 ‘하나님 없이 사는 자는 멸망할 짐승과 같다(12, 20절)’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의 12절과 20절에 ‘사람이 제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제 아무리 돈을 태산같이 쌓았더라도, 제 아무리 높은 벼슬을 했더라도, 제 아무리 하는 일마다 다 성공하여 사람들에게 유능한 자라 칭송을 받았더라도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무덤을 영원한 집으로 삼게 됩니다. 그 꼴이 짐승들의 운명과 다를 게 뭐냐는 거지요. “... 그들의 영원한 집, 영원히 머물 곳은 오직 무덤뿐이다(11절).” 그 죽음에서 건져낼 재물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여 산 자는 반드시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히 살게 된다고 시편 기자는 깨닫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목숨을 건져주시며, 스올의 세력에서 나를 건져주신다(15절).” 하나님을 경외하며 동행하는 삶을 사는 자에게 영생이 선물로 주어지고, 하나님 없이 열심을 내어 한평생을 산 자는 죽어 사멸한 짐승과 같다는 믿음이 정말로 귀하고 참됩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시편기자는 삶에 대한 불평불만을 떨쳐버리게 됩니다. 이것도 곰곰이 생각하면 나오는 결론입니다. 5, 6절을 보면 그는 하나님을 모른 채 세상에서 잘 나가는 자들이 자기를 괴롭혀도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 장담합니다. 그들은 절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시편기자는 깨닫습니다. 열심히 벌어 죽어 남 좋은 일 하고 영원히 무덤에서 썩어 흔적도 없게 될 자들이 뭐가 두려운 존재입니까? 그들은 두려움의 대상도 부러움의 대상도 아니라 단지 멸망하는 짐승과 같이 이성(理性)을 버린 가련한 자들일뿐입니다. 그들의 장래를 생각하고 나 자신의 영생을 생각하면 그들이 악인이 되어 잠시 나를 괴롭힌들 뭔 대수입니까? 우리가 또 생각해야 할 것은 이겁니다. 즉, 세상은 공평하다는 겁니다. 할 일이 많고 돈을 많이 버는 자는 그 일을 하느라 힘들어하고 대신 좀 부유하게 삽니다. 그러나 할 일이 적고 돈을 많이 못 버는 자는 신경 쓸 일이 별로 없어 그 방면으로는 힘이 들지 않지만 가난 때문에 약간 살기에 불편한 점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부자라고 부러워할 것도 못되고 가난하다고 비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큰 교회 목사님은 토요일 성도들 결혼 주례로 스케줄이 꽉 차 있지만 작은 교회 목사님은 같은 날 맘 편히 한적한 곳에서 주일 설교 준비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세상 공평하니 하나님 안에서 감사하며 자기 행복을 찾아 사는 것도 귀한 지혜입니다. 시편 기자가 말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갑부라 하여도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속량하지 못하는 법(6절).” 그러니 그는 자신의 영생을 생각하여 대단한 갑부이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자를 부러워하지 않겠다는 거지요. “제 아무리 갑부라 하여도...”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더라도, 그 집의 재산이 늘어나더라도, 너는 스스로 초라해지지 말아라(16절).”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게 나으니 여러분께서는 하나님 안에서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단 인색한 부자가 되지 마시고 후한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부자가 되시되 지혜로운 부자가 되십시오. 정직하게 번 재물로 하나님과 사람의 호감을 받고 사십시오. 혹시 가난하더라도 가난한 자의 행복도 꽤 많음을 아시고 범사에 감사드리며, 특히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마시고 그들로 인해 불평해 하지 마십시오. 가난한 자의 감사가 하나님께 가장 귀한 향기로운 제물임을 모르셨나요?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한 천국을 주시고, 여러분 모두에게 오늘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내려주시길 기도드립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