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12. 8. 동아 시사 발언대) English
성경에 인간이 하나님을 보고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했다. 너무나 거룩하신 분을 죄인인 인간이 보는 것 자체를 신성모독으로 여겼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나타나 말씀하시는 방법이 세 가지 있다. 먼저 흑암 중에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경우이다. 사무엘이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만났다. 이 경우 인간은 하나님의 본체를 볼 수 없다. 또 다른 방법은 하나님께서 강렬한 빛을 옷처럼 입으시고 인간에게 나타나신다. 사도 바울의 경우가 그와 같다. 이 경우에도 인간은 하나님을 감싸고 있는 강한 빛 때문에 하나님의 본체를 볼 수 없다. 이 두 경우는 인간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시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인간의 형상을 취하셔서 인간에게 나타나는 경우이다. 구약 시대 모세가 본 하나님이 이 경우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그분의 등을 보았다. 인간이 하나님을 똑바로 쳐다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이다. (신약 시대에 예수님의 성육신은 이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죄인은 하나님을 볼 수가 없다. 신약에도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 했다. 죄인이 하나님을 볼 경우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야말로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중에도 하나님을 보고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죽을 때까지 복음을 전하다 참수당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대부분의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3년 간 모시며 그분의 얼굴을 뵙고 나중에 다 순교당했다. 예수님 자신은 어떠했나?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 성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뵌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했다.
성경에 보면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역에 힘들어 지친 그분의 종들에게 다가오셔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힘을 주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장차 큰 일을 맡을 자에게 나타나셔서 친히 사명을 주신다. 하나님을 만난 후 모세가 양치기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고, 예수님을 만난 후 바울이 유대교 바리새파 교인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이다.
죄인이 하나님을 보면 그 벌로 죽음을 면치 못하나,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뵙고 큰 사명을 감당하고서 생을 마감한다. 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 죽음인가?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뵙고자 간절히 원하나 그 일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잘 모르고 있다. 하나님을 만나면 장래에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그 사건 자체에 큰 의미를 두면 안된다. 하나님을 정말로 만난 자의 삶이 예전과 다름이 없다면,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을 만난 자라면 삶이 질적으로 확 바뀌게 된다. 반대로, 어떤 기독교인이 어느 날 갑자기 삶이 질적으로 바뀌고 큰 사명감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기 시작했다면, 그는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는 못했을지라도 사실상 하나님을 만난 자이다. 아주 제대로 만난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