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12. 21. 동아 시사 발언대)
예수님을 만났던 그 날 베드로는 처음에는 매우 우울했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피라미 한 마리도 못잡은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부로 이름 꽤나 날렸던 베드로였는데 그날은 완전히 스타일 구겨진 날이었다. '아! 쪽팔려. 어떻게 빈 손으로 집에 돌아가나? 마누라 얼굴은 어떻게 보나? 장모님 얼굴이나 자식놈들 얼굴도 만만치 않네...'
어깨가 축 늘어진 채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와 뭍에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시더니 물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다.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혹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천국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지금 우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 말씀은 아니었을까?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베드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혹시 '당신같은 한가한 철학자가 어떻게 처자식 먹여살리려 이다지도 애쓰는 우리 서민들의 마음을 알겠소?', 이런 생각은 아니었을까?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저 쪽에 그물을 한 번 던져보시구려'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속는 셈치고 한 번 그곳에 그물을 던져봤다. 그런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다. 이에 베드로는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떠나소서'라고 했다.
베드로는 왜 죄책감을 느꼈을까? 고참 어부인 예수님을 몰라봤던 죄책감이었을까? (물론 예수께서는 목수이셨음.) 베드로는 예수님을 오해했었다. 베드로는 그분을 그저 할일없는 철학자요 민중 선동가 정도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분의 말씀은 권위가 있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니 기적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런 기적을 일으킬만한 분이라면 방금 전에 하셨던 모든 말씀도 진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 말씀은 지금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갑자기 베드로의 눈에 군중이 들어왔다. 거기에는 빈부귀천, 남녀노소 다 있었다. 그들은 밥도 굶어가며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진리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들은 베드로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베드로가 죄책감을 느꼈던 것이다. 하루 물고기를 좀 못잡았다고 그렇게 세상 끝날 것처럼 낙심하며 고민했던 자기의 인생관이 한심했던 것이다. 기적을 베푸실 수 있는 예수께서는 맘만 먹으시면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될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 예수께서는 가난하고 병들고 낙심한 자들과 함께 다니시며 베드로의 인생관 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삶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셨던 것이다. '저렇게 차원이 높으신 분에게 내가 속으로 비아냥 거렸다니...!'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가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했던 것은 아닐까? 죄가 없다면 죄인이라고 고백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주님, 저를 떠나소서'라고 베드로가 말한 이유는 아마도 마누라와 장모님과 자식들 생각이 나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인간적인 맘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겠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제쳐두고 예수님을 따른 베드로는 정말 위대한 사람이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 또 하나 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생의 최고 업적을 이루게 하시고 그 직업을 떠나 새 인생길을 가게 하셨다. 그 이유는 장래에 베드로가 좀 더 큰 자부심을 갖고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사시에 열 번 낙방하고 나서 하나님의 종이 되는 자와 사시를 한 번 봐서 보란 듯이 합격하고 나서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종이 된 자는 자존심에 큰 차이가 있다. '세상에서 잘 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했다'는 자존심.
세상에서 성공한 자가 계시는가? 그러면 이제 세상 일도 성실히 하고 하나님의 일에도 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세상적 성공을 허락하신 이유는 자존심을 갖고 하나님 일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다. 세상에서 큰 성공을 하였으나 하나님 일에 무관심한 자는 정말 죄인이다. 욕심 많은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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