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들

하나님의 사랑

stevision 2012. 12. 7. 20:01

(05. 2. 19. 동아 시사 발언대)

 

하나님의 사랑은 고통받는 자들을 향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바로의 종으로 고생하며 신음할 때 바로의 군대를 다 수장시키고 바로의 장남을 비롯한 모든 애굽의 장남을 남김없이 몰살시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남을 괴롭히는 바로에게 향하면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공범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인간들을 도와 범죄를 행하시겠습니까?

창녀가 계속 그 짓을 하겠다고 할 경우 그 창녀에게 향할 하나님의 사랑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불심판만 있을 뿐입니다. 이 경우 하나님의 사랑은 그 창녀 하나 때문에 고통을 겪는 많은 선량한 가정주부들에게로 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가졍주부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창녀를 처단하시는 것입니다.

동성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정신병자들과 사악한 문화에 빠진 자들이 자꾸 동성애를 미화하여 문화와 예술을 통해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향할 하나님의 사랑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들 사악한 자들 때문에 가정, 특히 그 부모와 형제들이 당할 고통을 생각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이 사악한 짓을 하는 자들을 처단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아느냐?
그분께서 얼마나 간음을 싫어하시는지 아느냐?
그분께서 얼마나 동성애를 혐오하시는지 아느냐?
그분께서 얼마나 거만한 자들을 미워하시는지 아느냐?

너희가 그런 하나님을 안다면 어찌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는 자에게 사랑이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느냐?<<

아론의 금송아지 우상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려 하셨으나 모세가 중보기도를 하여 하나님께서 아론을 용서하셔습니다. 왜 모세가 아론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나요? 먼저 아론은 이스라엘의 강요에 못이겨 그 일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또 그 이유는 아론이 비록 형이었지만 모세 앞에 겸허히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도 악했던 왕 아합도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허했을 때 생명을 연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거만한 자에게 향할 하나님의 사랑이 전혀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완성되고 나서 처음 나타난 이단이 바로 마르시온 이단입니다. 이 마르시온이라는 자는 구약의 여호와를 전쟁과 보복을 일삼는 수준 낮은 신으로 보고 신약의 하나님과 다른 신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는 신약 중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중시하는 부분을 성경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한 마디로 사랑의 하나님만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자는 이단으로 판정받았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사랑의 하나님만 주장하면 마르시온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두 종류의 위선자들이 있습니다. 한 종류는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런 유의 위선자는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며 또 다른 자들에게는 율법을 지키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는 그렇게 살지 않는 자입니다. 이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위선자입니다. 다른 종류의 위선자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 맘대로, 특히 자기의 신앙심을 과시하기 위해 선포하는 자입니다. 회개를 거부하여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에게 건방지게 용서를 선포합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짓입니까? 자기가 하나님보다 사랑이 더 크다고 과시라도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위선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맨 마지막을 요한계시록으로 삼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보복드라마가 나옵니다. 회개를 거부한 자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밝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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