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예수님의 용서와 사형제도

stevision 2012. 12. 11. 14:13

(2010년 3월 22일 인터엣에 공개)

 

23:34 :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요즘 온 나라가 흉악범 처형 문제로 들끓고 있다. 기독교 윤리학자라는 자들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고, 기독교 목사들이 사형제 폐지 운동 단체를 결성하기까지 했다. 특히 한국에서 인권운동 잘 하기로 소문난 천주교에서 사형제 폐지를 크게 외치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에 자기를 처형하는 자들을 보시며 하신 말씀이 위의 성경 말씀이다. 그런데 잘 보시라. 지금 예수께서 살인자를 용서하시고 계시는가, 아니면 뭐가 뭔지도 모르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형을 집행하고 있는 사형집행자들을 용서하시고 계시는가? 저 말씀이 구약의 지엄한 법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처형하라와 상충하나? 예수께서는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고의적 살인자가 아닌 자들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드리고 계신 것이다. 스데반이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때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7:60)”라고 했다. 이 때의 유대인들이 고의적 살인자였나?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신봉하고 있는 율법을 스데반이 무시한다고 생각하여 자기들은 하나님과 성전과 율법을 위한다고 생각하고 스데반을 죽인 것이다. 그러니 이들도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 속한 것이고, 스데반이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한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한 강도를 극적으로 구원하신 장면이 나온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근거로 예수께서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원하신다고 해야 하나? 천만의 말씀. 그 강도는 로마법에 따라 흉악범의 자격으로 사형이 집행되는 중에 예수님을 만나 횡재한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는 중죄를 지어 국가 권력에 의해 사형에 처해질 자도 은혜로 용서하시어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을 뿐이지, 고의로 사람을 죽인 죄를 국가가 함부로 용서해도 된다고 하신 게 아니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 국가, 개인의 차원의 죄의 책임이 있게 된다. 온 인류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들이므로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한 개인에게 죄를 범하면 그 자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도 죄를 범한 것이 된다. 그리고 국가(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고, 그 대신 국가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한 개인에게 죄를 범하면 그 개인이 속해 있는 국가에도 죄를 범한 것이 된다. 예수께서는 개인의 차원의 죄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용서를 구하면이라는 것은 용서해준다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는 개념이다.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자에게 어떻게 용서라는 행위를 하나? 예수께서 용서를 가르치시며 일만달란트 빚진 자 예를 드셨다. 일만달란트 빚진 자는 채권자에게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했다. 이것이 용서를 구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도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것이 복음이다. 그러나 구약이나 신약이나 어디를 보더라도 고의적 살인범이 죄를 뉘우칠 경우 국가가 사면(처형 면제)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이 전혀 없다.

 

구약에서 간음은 반드시 죽여야 할 죄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왔다. “어찌해야 하나요?” 예수께서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하셨고, 아무도 그 여자를 돌로 치지 못하고 다 달아났다. 예수께서도 나도 너를 정죄(유죄판결)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전에도 밝혔듯이 이 말씀은 용서라기보다는 선고유예의 성격이 짙다. 예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신 게 아니라 용서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므로, 정죄보다는 선고유예 판결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고의적 살인사건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만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지 결코 간음의 피해 당사자와 국가로부터 용서받은 게 아니다. 국가권력이 그 여인의 죄를 인지했다면 그 여인 법대로 돌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성경에 그 부분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고의적 살인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셨나? “법대로!”이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23:35).” 의로운 피가 바로 모든 고의적 살인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고의로 자기를 죽이려는 제사장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셨나?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19:10-11).” 예수께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음모를 꾸민 제사장 무리를 개인적으로도 용서 안 하셨다. 베드로에게 490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던 예수께서 왜 개인적인 죄를 용서 안 하셨을까? 그것은 죄 짓는 자가 용서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이 사랑 많으신 예수께 용서받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용서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까지 시기와 질투로 증오심을 불태워 예수님을 로마인들의 손에 죽게 했으니 어찌 사랑 많으신 예수님인들 그들을 용서하실 수 있으랴!

 

고의적 살인자들의 경우를 보자.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들은 거의 100% 그들을 용서치 않는 마음을 품고 죽어갔을 것이다. 고의적 살인자를 피살자가 용서했을 거라 누가 감히 주장할 수 있나? 무슨 자격으로 피살자가 아닌 개인(판사, 대통령)이나 국가가 살해자를 용서할 수 있나? 용서할 자격과 권한은 피해 당사자에게만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는 이 땅에서 용서해줄 자가 없게 되었으므로(왜냐, 자기를 용서해줄 자가 이미 살해되었으므로) 반드시 사형당함으로 자기 죗값을 치러야 한다.

 

요즘 사형선고 받는 죄인들은 강간 살인하면 사형당할 수 있다는 법조항을 뻔히 알고도 순간의 성적 쾌락을 위해 어린이와 여인을 유괴하여 성폭행하고 살인했다. 발각되면 죽을 줄 알고도 그 짓을 했으니 반드시 처형을 하여 하나님의 법과 국가권력의 법을 무시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해야 한다.

 

따라서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들을 판사가 함부로 사형 아닌 징역형에 처하거나, 사형수들을 함부로 대통령이 사면하거나 사형을 집행하지 않을 때 그 살인죄를 자신들이 대신 감당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종교인들은 건방지고 교만한 짓 그만 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사형제 폐지 헌법을 제정하려 하거나 사형제 폐지 법안을 만들려 할 때 하나님의 대적자가 됨을 알고 경거망동을 그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인들, 특히 기독교인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고의로 살인한 자도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갈 수는 있으나, 고의살인자를 반드시 처형하라는 하나님의 지엄한 말씀에 따라 고의살인자는 반드시 처형되어야 한다"가 기독교 정신에 부합함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고의살인의 경우 사형이 면제되는 경우를 극히 일부분으로 제한 해야 하며, 강도살인, 강간살인, 유괴살인, 부모나 자식 살인의 경우는 예외를 두지 말고 반드시 처형토록 법을 강화해야 한다. 기독교 성직자들은 사형수가 죄를 회개하고 착한 모습을 보인다고 감형운동을 해서는 안된다. 사형수에게 복음을 전해 예수님을 영접케 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사형집행에 응하도록 하고, 고의살인에 대한 지엄한 책임을 만민에게 보여주고 천국에 가도록 신앙상담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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