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이 시대의 사이비 복음, 사이비 설교

stevision 2014. 4. 29. 10:22

이 시대의 사이비 복음, 사이비 설교

  

 

1) 마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2) 눅18:1-8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하되 ... ...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

3) 마7:15, 16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종교 사기꾼 ㅈ씨는 1, 2 번 성경 말씀을 근거로 자신의 탐욕의 목회를 강행하여 재벌 목회와 황제 목회를 했다. 인터넷에서 비기독교인들의 혐오와 비판의 대상 1위가 바로 저 ㅈ씨다. 사람들 앞에 기독교의 가치를 한없이 추락시킨 자가 바로 저 늙은이다. 예수님께서 “네 배만 채우는 기도, 네 집안 식구만 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저런 말씀을 하셨겠는가? 저 과부의 기도에서 기독교인이 “끝까지 해도 되는 기도의 내용”이 뭔가? “억울한 일 당했으니 제 한 좀 풀어 주십시오”가 아닌가? 양(羊) 도둑놈 심보 가지고 교회 부흥시켜달라고 ㅈ씨처럼 끝까지 하나님을 물고 들어지는 것은 저 두 번째 성경 말씀의 실천이 결코 아니다. 저 종교사기꾼 TV에서 설교 때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도 들어주실 때까지 끝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열변을 토하던데, 이건 사이비 복음, 사이비 설교고, 참 설교, 참 가르침은 이것이다: “주님의 뜻에 맞는 기도 드려야하고, 주님께서 NO 하시면 더 이상 군소리 않고 ‘네, 잘 알겠습니다. 고집부리지 않고 그런 내용의 기도 더 이상 드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저 욕심쟁이 늙은이는 하나님보다, 예수님보다, 교회보다, 교회 성도보다 제 배와 명예, 제 마누라, 제 자식들을 더 아끼고 위한 자다.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시대의 교회가 빠질 수 있는 최악(最惡)의 죄악(罪惡)의 표상이 저 늙은 종교사기꾼 ㅈ씨다.

    

 

죽어가는 영혼 구원해달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드리는 기도,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이고, ‘내 교회 부흥케 하소서라는 내용의 사생결단식 기도’는 ‘먹을 것 입을 것을 먼저 구하는 이방인의 기도’다. 이방인은 인격적인 하나님,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모르기에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 우상에게 복을 강요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 때 어떻게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며 사생결단식 기도를 드릴 수 있나?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 모욕적인 것이고, 하나님께 소위 (즉 세상적) ‘복’을 달라고 기도 드리는 것은 그분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의심하는 태도가 아닌가? 하늘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계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자녀라면 마땅히 아버지의 집이 잘 되게 하는 방향으로 기도를 드려야 하지 않은가? 아버지의 집이 잘 되게, 즉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사모해야 함이 마땅하나, 예수님께서는 순서가 바른 기도, 순서가 바른 신앙생활을 할 때 그 복이 덤으로 주어진다 말씀하신다. 자녀로서의 마음가짐이 바를 때 아버지로부터 넘치는 복이 당연히 주어진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토록 받기 바라는 소위 세상적 복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자녀이면 당연히 때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다.

    

 

다른 교회들이 희생을 당하더라도 제 교회만 부흥케 해달라고 끝까지 기도를 드린 저 ㅈ씨에게 하나님께서는 말년의 치욕을 안겨주셨다. 세상 법정을 통해서 말이다. 성도들의 돈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며 유부녀와 간통을 저질러 사생아까지 낳은 ㅈ씨의 장남이 법정구속 되었을 때 ㅈ씨의 ‘끝장을 보는 기도’가 다 ‘사이비 기도’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제 아들 무죄판결 받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안 드렸겠는가? ㅈ씨도 집행유예였지? 늙은이 감옥에 넣고 보살피는 게 국가에 짐이 됐겠지. 제 배만 채우려고 끝까지 하는 사생결단식 기도를 하나님께서 매우 혐오스러워 하심을 우리는 저 ㅈ씨의 말년 모습에서 보고 깨달아야 한다. 에서가 억지로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복을 받아내려다 저주를 받았다. ㅈ씨가 꼭 그 꼴이다. 성직자 신분을 갖고 탐욕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저주가 어디 있단 말인가?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음을 심각한 저주로 생각하지 않는 그 마음 자체가 심각한 저주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이런 욕을 얻어먹고 있느니 난 떳떳하다’라고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으니, ... 화인(불도장, 낙인) 맞은 심령!

    

 

ㅈ씨, 당신은 천국의 문을 막은 자요. 세상 사람들의 머리 속에 ‘교회 가면 ㅈ씨와 같은 목사들에게 착취당한다’는 인식을 팍팍 심어준 자가 바로 당신이오. 당신 꼴 보기 싫어 교회 떠난 사람도 있고, 당신 꼴 보기 싫어 기독교에 들어오길 거부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오? 이 탐욕스런 종교사기꾼아!

    

 

‘무엇을 주세요, 무엇이 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우리가 드릴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런 기도가 하나님을 강요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그런 자격의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다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 욕심으로 막무가내로 사생결단식 ‘내 소원성취’ 기도를 밤낮 끊이지 않고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 입장이 얼마나 난처하시겠는가? 그런 이기주의적 기도가 얼마나 혐오스러우시겠는가! 우리는 남과 경쟁관계에 있는 어떤 문제로 사생결단식 기도를 드리는 일을 삼가야 한다. 대신 ‘억울한 일’ 예컨대 ‘부당한 대우’, ‘부당한 처벌’이라든가, ‘영혼 구원’, ‘자신의 희생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여건 개선이나 자기 결심을 위한 사생결단식 기도를 드려도 된다.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것 말이다. 에스더처럼.

 

  예수님께서는 위의 성경말씀을 통하여 ‘억울한 일을 당했을 경우에 도저히 견딜 수 없거든 하나님께 매달리듯 아뢰어 문제 해결을 받으라’ 말씀하신다. 정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 자녀의 억울한 일을 해결해 주시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눅11장에서 간청하는 기도에 대한 교훈 하나를 더 주신다. 여기서 제자들이 “주님,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오”하니,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그 내용을 모르는 신자들은 없을 테니 생략하고, 그 주기도문을 알려주신 다음에 예수께서는 어떤 자에게 밤중에 자기 집에 친구가 왔는데 마침 대접할 음식이 없어 옆집 친구에게 가서 귀찮게 잠을 깨워 빵 세 덩이를 꾸었다는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옆집 사람이 ‘친구이기 때문에 꾸어준 게 아니라 귀찮게 굴어 꾸어줬다’ 하시며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하나님을 귀찮게 해서라도 우리가 기도를 해서 꼭 얻어내는 것이 ‘돈’, ‘명예’, ‘세상적 만사형통’이 아니라 바로 ‘성령(즉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다. 예수께서는 신자가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거라 말씀하셨다. 세상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예수님 때문에 고생하는 자들이 복 받은 자들이라 하셨다.

    

 

 

  ㅈ씨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기 집안을 털끝만큼도 희생하지 않은 자이다. ㅈ씨는 ‘이기적인 사생결단식 끝장을 보는 기도’를 가르쳤으나, 정작 예수께서 가르치신 ‘끈질긴 기도’는 ‘억울한 일 해결, 성령 충만’을 위한 것이었다.

    

 

 

 

나의 이익에 관련된 것이라면 “주님 저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지금도 살만합니다. 그러니 주님 마음 편하신 대로 제 길을 인도하여 주십시오”, 이게 정답이다. 그리고 내게 어떤 고난이 혹시 닥치더라도, ‘아버지 하나님, 이 일이 제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께 영광이 되고, 교회 전체에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인도하소서’라고 기도 드려야 한다. 혹시 내게 손해가 있을지라도 말이다. 예수께서는 이 기도를 드리셨고, 이 기도를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이것이 자식의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다. 세계를 경영하시고, 온 교회를 경영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기적인 기도를 드리는 일이 얼마나 죄송스런 일인지 깨달아야 한다. 내가 그것을 차지하면 타인이 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ㅈ씨 혼자 교회부흥 잔치 벌이며 좋아라 할 때 얼마나 많은 다른 주의 종들이 눈물을 흘렸는가! ㅈ씨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라는 소리가 수많은 주의 종들의 탄식과 눈물보다 더 위력적이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단 말인가? 감리교에서는 감독회장 자리 차지하려 목사라는 자들이 얼마나 피 튀기며 다퉜는가. 양보와 순종을 모르는 막무가내식 이기주의적 기도와 그러한 신앙태도가 얼마나 교회에 큰 해악을 끼쳤는지 아직도 모르시겠는가?

 

 

 

 

자기 교회 부흥할 만큼 했는데도, 다른 교회들에서는 주의 종들이 교인이 없어 생계 걱정에 목회도 제대로 못할 지경인데, 끊임없이 거머리처럼 ‘50만, 60만, 70만 교인을 주소서’라며 사생결단식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혐오스럽겠는가!

    

 

이렇게 비판을 하면 ㅈ씨는 “내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교회가 커야 큰 일을 하지...”라며 자신을 합리화 할 것이다.

    

 

다음은 예수님의 말씀이다.

“나더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거룩한 목표와 거룩한 봉사를 핑계로 불순종의 형벌을 모면할 생각을 말라는 게 예수님 말씀이다. 진정한, 객관적인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한다는 제 판단대로의 뜻’만 내세웠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들은 돈과 자신의 영광을 사랑하는 자들이었다. ㅈ씨가 얼마나 돈을 사랑했는가! 또한 세계 최고의 목회성공을 한 사람으로 추앙받기 위해 ㅈ씨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 사이비 종교 교주 ㅁ씨도 돈을 사랑했고, 자신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예수님을 가짜라고 말하고 자기가 진짜 구세주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다. ㅁ씨는 몸에서 잘려나간 암 덩어리이고 ㅈ씨와 같은 사이비 목사는 몸 속에서 붙어있으며 영양가 빨아먹고 몸을 말라죽게 하는 몸 속의 암 덩어리라고. 사실은 ㅁ씨보다 ㅈ씨가 더 예수님의 교회에 해로운 존재라고. 이런 바른 판단을 하는 것이 ㅈ씨 교회에서 70만 명이 일만(一萬) 시간 이기적인 방언기도 하는 것보다 교회에 더 유익이다.

    

 

그리고 사실 교회가 크면 담임자는 자기 교회의 체면에 맞는 큰 일을 벌이려 기를 쓴다. 대학을 세운다든가, 멋있는 건물을 짓는다든가 해서 눈에 보이는 큰 물건을 내놓으려 한다. 그러나 그게 복음전파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 돈 해외 선교사들의 복지를 위해 쓴다면 얼마나 세계선교에 힘이 되겠는가! 최근에 2000억 정도 되는 새 성전을 지은 교회가 있는데, 그 돈이면 아프리카 전체를 복음화하고도 남을 돈이다. 2000명의 선교사들에게 한 달에 100만원씩 10년 간 후원해 줄 수 있는 돈이 아닌가?

    

 

객관적으로 ㅈ씨의 열매를 살펴보자. ㅈ씨의 사이비 복음 때문에 한국 교회의 머리에 해당하는 목사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썩어서 한국 교회가 부패해졌는가! ㅈ씨 때문에 얼마나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의 위상이 시궁창에 처박혔는가! ㅈ씨처럼 대한민국에서 많은 자들이 보는 가운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가 또 있는가? ㅈ씨 아니면 ㅈ씨가 행했다는 여러 일들을 할 사람이 대한민국에 없었단 말인가? ㅈ씨의 사이비 복음의 또 다른 열매는 담임목사직 세습이다. 아비와 자식이 사생결단식 기도를 오래 하고 스스로 확신에 차서 성직세습을 밀어붙인 게 한둘인가? ㅈ씨의 제자들도 ㅈ씨처럼 더러운 이름을 영원히 이마에 붙이고 다니리라! >>예수님을 배반한 탐욕스런 종교사기꾼!<<

    

 

다시는 ㅈ씨와 같은 거머리 사이비 목사가 기독교 성직자로 나서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성도님들은 ㅈ씨가 지금까지 한 모든 설교가 사이비 복음, 사이비 설교였음을 아시고, 특히 설교 따로 행위 전혀 따로인 ㅈ씨를 본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마음에 소원이 있으시면 성령 안에서 기도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신 거룩한 소망도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소망은 대개는 하나님 나라와 관계된 것이지 자기 개인의 출세와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공적이든 개인적이든 성령께서 주시는 소원은 매일 매일 기도 시간에 그것을 위해 기도하며 자신을 준비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자기에게 어떤 개인적인 간절한 소망이 있을 때에도 성령께서는 그런 개인적인 것보다는 하나님 나라 전체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더 갖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그릇된 것을 구할 때, 우리가 성령 안에 살면 반드시 성령께서 우리의 잘못된 기도를 바로잡아 주십니다. 성령 안에서 드리는 개인적인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꼭 필요한 것을 꼭 필요한 만큼 달라고 우리가 기도드릴 때 그것은 욕심이 없는 아름다운 기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을 다 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여 하나님의 속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구할 때, 하나님께서 흔쾌히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사생결단식 기도가 아니더라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기도는 먹을 것을 구하는 기도라기보다는 ‘내 탐욕 자체를 위한 복은 주지 마옵소서’라는 절제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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