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칼 바르트(K. Barth)의 삼위일체론 이해

stevision 2014. 7. 12. 10:18

어거스틴이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사용한 것이 '사랑의 행위'이다. 사랑에는 '사랑하는 자', '사랑 받는 자', '사랑'이 존재한다. 이 셋은 서로 구분이 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일체성을 이룬다. 사랑은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를 연합시킨다. 어거스틴은 또한 인간의 정신현상을 예로 들어 삼위일체를 설명한다. 하나의 인간의 정신현상 안에는 '지성', '의지', '기억'이 있다. 마찬가지로 한 삼위일체 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신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혹은 개시(開示 : 열어 보임)) 사건'을 자신의 삼위일체론의 근거로 삼는다.

 

 

전에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을 읽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바르트가 어거스틴처럼 삼위일체의 비유를 그냥 비유라 했으면 공감할 수 있겠지만, 삼위일체의 비유를 실제적인 삼위일체 설명으로 제시하며 삼위일체론을 전개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자기 계시'라는 사건이 없어도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함없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한 인간 A가 다른 인간 B에게 자신을 드러낼 때 단 하나의 인격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실 때 굳이 세 위격들이 필요할 이유가 있겠는가?

 

 

바르트는 성부를 Offenbarer, 성자를 Offenbarwerden, 성령을 Offenbarsein이라 했다. 이 단어들은 바르트가 조어한 것이다. 사전에 없는 내용이니 해석자의 이해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계시와 관련된 독일어 단어는 다음과 같다:

1. offenbar : a. 분명한, 명백한

2. offenbaren : v. 계시하다

3. Offenbarung : n. 계시

 

 

바르트의 삼위일체론 요약을 보통 다음과 같이 하는 자들이 있다.

 

 

Offenbarer - Offenbarung - Offenbarsein

 

 

혹은

 

 

Offenbarer - Offenbarwerden - Offenbarsein

 

 

이것을 좀 더 쉽게 풀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자들도 있다.

 

 

계시자 - 계시된 자(계시내용) - 계시사건

 

 

 

문제는 Offenbarsein을 '계시사건'이라 할 수 있는가이다. lehren(가르치다)과 Lehrer(교사)의 관계처럼 offenbaren에서 Offenbar(계시행위)와 Offenbarer(계시자)를 도출할 수 있다고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우리에게 혼동을 주는 것은 원래 offenbar라는 형용사가 있고, 그것에는 '계시 가능한'이라는 뜻이 없으며, offenbaren을 고려하면 이 동사로부터 저 형용사와 동일한 스펠링의 Offenbar라는 '계시행위'의 뜻을 가진 명사를 도출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또 바르트가 Offenbarsein 대신 속시원하게 '계시(Offenbarung)'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도 우리에게 혼란을 준다. 바르트가 어거스틴의 전개방식을 따라 '계시'를 매개로 삼위일체를 설명하려 했다면, '사랑하는 자 - 사랑받는 자 - 사랑'처럼 '계시하는 자 - 계시된 자 - 계시(Offenbarung)'라고 솔직히 밝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신의 신학이 어거스틴의 도식을 사용한 사실을 은폐하려 그랬던 것일가?)

 

 

어쨌든 바르트가 성부를 'Offenbarer(계시자)', 성자를 '계시된 자'라고 했다면 당연히 성령은 이 계시자와 계시된 자를 연합시키는 '계시(계시사건, 계시행위)'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에서 성령을 지칭하는 'Offenbarsein'은 '계시(계시 사건, 계시 활동)'로 규정함이 옳을 듯 싶다.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에 등장하는 단어의 모호성 때문에 고생하실 신학도들을 생각하며 잠시 제 생각을 제시해 보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바르트 신학 전문가님이 계시다면 혹시 다른 의견이 있으실 경우 댓글로 의견을 표해주시어 신학도들이 바르트 신학의 망망대해에서 헤매지 않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