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새 술은 맛이 없다는 사람들 (눅5:37-39)

stevision 2015. 2. 13. 14:37

>>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눅5:37-39)<<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이 땅에 무너진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우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분의 뜻대로 사는 자가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영생을 얻게 된다. 그런데 그분의 말씀을 수용하기를 거부하며 사사건건 예수님의 일을 트집잡아 방해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때 예수님께서 뼈 있는 말씀을 하셨는데, '묵은 술을 먹은 자들은 새 술을 마시려 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즉 예수님께서는 어떤 자가 새 술을 마시기 싫어하시는지 알려주신 것이다.

 

새 술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이라 할 수 있다. 즉 새 술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말한다. 그러면 묵은 술은? 지금까지 나를 기쁘게 해주었던 제도와 사상이 되겠지. 바리새인들, 율법사들, 제사장들은 그때까지 자신들이 누렸던 그 종교 제도와 종교이데올로기에 푹 취해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었다. 이게 바로 묵은 술에 맛이 들여진 상태다. 이들이 나사렛 촌 동네 출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셔야 하는 새 술에 맛을 들이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었을 것이다.

 

불법적으로 제 아비 목사에게서 교회를 물려받은 세습 목사에게 새 술은 '자기 집안의 죄를 하나님과 온 교회 앞에서 자백하고 용서를 구한 후, 겸허히 그 교회에서 나와 작은 교회에서부터 목회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어지간히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지 않고는 맛 있는 묵은 술을 버리고 떫은 새 술을 마실 수 없겠지.

 


불교 중이 기독교 복음을 접하고 겸허히 묵은 술을 버리고 새 술을 마시기도 참 어려울 것이다. 중이 되기까지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리고 지금 얼마나 대우받고 사는데, 지금 이 삶을 버리고 기독교에 들어가 초신자가 되어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 시작하나? 세례신자 - 집사 - 권사 - 장로 - 목사, 이 체계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할 것이다. 그러나 참된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새 술이 맛이 없더라도 새 술을 마셔야 한다.

 

그런데 새 술은 처음에는 '십자가'라는 떫은 맛이 있기는 하나, 우리가 참 신자가 되고, 참 은혜 안에 살 때 그 떫은 맛이 가장 달콤하게 변하게 된다. 그 때에는 묵은 술이 바울처럼 배설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