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마27:46 -

stevision 2017. 1. 19. 09:39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27:46)."


위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의 시험과 시련이 임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 도움의 손길을 바라고 기도하고 기도했건만 하나님께서 계속 모른 체 하시고 계시어, 마침내 마음에 상처가 생겨 못이 몸을 뚫고 들어 오는 듯한 고통이 있고, 시험의 채찍으로 마음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 마음에서 피가 철철철 흐르기까지 시험의 기간이 지속될 수 있음을 성도는 알고 대비해야 한다.


신앙의 정서상, 자기의 믿음의 분량상 견딜 수 있는 시험이라면 그게 무슨 진정한 시험인가? 바울이 해산의 고통 가운데 주의 복음을 전했다고 했다. 해산의 고통은 상식 이상의, 맨 정신으로 감당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말한다. 예수님조차 십자가에서 '왜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외칠 정도의, 이성을 잃을 정도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고통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저런 해산의 고통과 같은 시험을 성도, 특히 목회자에게 허용하시는 것은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정말 내 양들을 네 몸, 네 생명보다 더 사랑하느냐?'를 묻고자 하심이다. 해산의 고통의 시련을 잘 감당한 자들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참 믿음, 유효한 믿음으로 인정해주신다. 그 자의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인정해주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 혹은 일반 성도가 어떤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린다고 하자. 그렇지만 여러 형편상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이루어주시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적으로 볼 때 자신이 버림 받았다는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때에도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견지할 때, 이 자는 모든 시련을 이긴 자가 된다. 외견상 버림받았음에도 신앙을 잃지 않을 때 이 믿음이 진짜 믿음이다. 아브라함이 그랬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 땅에 왔음에도 아브라함에게 큰 기근이라는 시련이 닥쳤다. 아브라함이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겠지. 그렇지만 응답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목숨을 부지하고자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갔다. 말하자면 하나님께 부름 받고 버림받은 것이다. 혹자는 아브라함이 믿음이 적어 애굽에 갔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아브라함은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애굽에 간 것이다. 그 시련 이후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했다. 또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나 응답이 없었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아내의 여종 하갈을 취해 아들을 낳았다. 혹자는 아브라함이 믿음이 적어 하갈을 취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인간적으로 말해 여기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약속을 받은 후에 버림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 상황은 아브라함의 판단과 인내를 벗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아내 사라는 경수가 끊길 때까지 아들이 없었다. 그건 누가 봐도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아브라함 부부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상황인 것이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이나 기독교인들이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본래의 약속의 파기나 그분의 신실치 못하심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버림받음'은 신자의 본래의 신앙을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다. 전쟁시 어느 부대가 조국의 명에 따라 전투에 나섰을 때, 조국의 어떤 사정에 의해 보급품을 지원받지 못해 큰 인명손실을 보고 가까스로 전투에 승리했다고 하자. 이 부대는 조국의 풍성한 지원을 받아 큰 전과를 낸 부대보다 조국을 더 사랑한 부대였고, 더 위대한 부대였고, 나중에 국가로부터 포상을 더 받을 것이다. 하늘나라의 군대에 그런 상황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군병들에게 그런 버림받음의 상황을 허용하시는 것은 그들의 믿음을 돋보이게 하고 더 칭찬하시기 위함이고,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함이다. 잠시 버림 받은 자들이 하나님을 등질 위험이 있음에도 그런 상황을 허용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군병들을 '충성되이 여기시고 철저히 신뢰하셨기' 때문이다. 버림받음은 사실은 최고의 명예이다. 우리가 그것을 수용하고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명예와 지위를 생각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오직 '자녀의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만 하나님께서 그런 '버림'의 시련을 허락하시고, 그런 '버림'을 당하고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이심을 믿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참 자녀의 믿음'을 가진 자들로 인정된다.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존경하는 자들이 자녀들이다. 버림받은 상황도 해산의 고통에 속한다.


예수께서는 상식 이상의 해산의 고통을 끝까지 순종하는 마음으로 감당해내셔서, 자신이 성부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온 인류를 진정 사랑함을 증명하셨다. 바울도 해산의 고통 가운데 복음을 끝까지 전해 교회를 세움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양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멋지게 임증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떤 자에게 일을 맡겨 놓으시고 그 자에게서 충성을 요구하신다는 말이다. 충성은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말하고, 이는 어려운 조건과 환경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일을 맡겨 놓으신 자에게 만사형통같은 순탄한 길을 주시기보다는 어려운 힘든 길을 주실 때가 많음을 암시한다. 이는 나중에 우리에게 더 칭찬을 해주시려는 그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러분께서 해산의 고통과 같은 시험까지 잘 감당할 수 있는 믿음과 인내를 갖추시기를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위로하며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