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철수와 영희가 있다고 하자. 철수는 영희를 인식하고 대화를 나눈다. 이게 가능하려면 철수와 영희를 포괄하며 이 둘을 초월하는 현실, 즉 이 둘을 창조하시고 현재도 이 둘의 존재를 유지하고 계신 한 분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 이 초월적 현실이 없다면 설사 철수와 영희가 스스로 존재하고 있더라도 철수는 영희를 인식할 수 없고, 영희는 철수를 인식할 수 없다. 이 둘 밖의 소리와 빛이 존재하지 않을 시에 이 둘은 서로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우는 어떠하실까?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을, 성자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시며 교통하실까? 이 두 분들께서는 완전한 신성을 지니신 두 신격들이시다. 이 두분의 교통이 가능하려면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1. 이 두 분들을 포괄하며 이 두 분들을 초월하는 어떤 초월적 현실이 존재하여 이 두 분들의 교통을 중개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하나님을 창조한 어떤 다른 상위의 초월적 존재를 전제로 하기에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개념에 위배된다.
2. 성자의 출생의 결과가 '성자가 성부의 존재 안에, 성부가 성자의 존재 안에' 계시는 상황일 때, 즉 이 두 분들께서 하나의 신적 실체를 이루시는 상황이 될 때.
이렇게 될 때에만 성부와 성자는 서로를 인식하시며 교통하실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령까지 포함한다면, 오직 삼위일체일 때에만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를 인식하시고 교통하시게 된다는 말이다.
비유를 들어보자. 무한한 공간이 살아 있는 하나의 특이한 생명체라고 가정하자. 이 공간이 아들(!)을 낳았다면, 그 아들은 본래의 공간(아버지 공간)과 동일한 특성을 지닌 공간이고, 이 아들 공간은 그 특성상 공간의 차원에만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아버지 공간안에 아들 공간이 있고, 아들 공간 안에 아버지 공간이 있게 된다. 둘 다 무한히 크므로 서로가 서로를 존재적으로 다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일지라도 아버지 공간과 아들 공간이 서로를 인식하고 교통하기 위해서는 둘이 하나의 실체가 되어 있어야 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나 심오한 상황이다. 둘이 같은 차원의 공간에 공존하는 것과 서로를 인식하며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둘이 같은 차원의 공간에 공존하면서도 서로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다 완전한 신성을 지니신 위격(신격)들이시므로 다같이 한 형이상학적 공간, 즉 하나님의 존재의 차원에 공존하신다. (물론 전에 내가 성령께서는 현실의 공간에 파송된 하나님의 영이라 규정을 한 바가 있다. 여기서는 편의상 그렇게 보자는 것이다.) 이 상황이 세 위격들의 상호 인식, 파악, 교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 위격들의 상호인식과 교통은 성부의 존재를 성자와 성령께서 공유하시고, 성자의 존재를 성부와 성령께서 공유하시고, 성령의 존재를 성부와 성자께서 공유하실 때 확실히 보장된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를 인식하기 위해서 '하나의 신적 실체'를 이루셔야 하고, '상호 존재의 공유'가 있어야 한다. 이 상황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심오한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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