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삼하17:23) : 자살은 옳지 않습니다

stevision 2012. 11. 24. 11:26

 

(2007년 2월 17일 동아 시사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자살은 옳지 않습니다                                                English
말씀: 삼하17:23

  

 

 

>>아히도벨이 자기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 아비 묘에 장사되니라.<<

요즘 자살하는 연예인들 보니 다 기독교인들이더군요. 영화배우 이모양, 어떤 여가수, 이번에 또 자살한 탈렌트 정모양도 기독교인이더군요. 자살한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여러 사람들이 보는 데서 부검까지 당하고 정말 부끄러운 죽음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은 불치병에 걸려 이왕 죽을 거 고생이나 덜 하고 죽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또 심하게 명예가 훼손되고 남 보기 도저히 부끄러워 자살을 하는 자들도 있겠지요. 생계가 막막하여 일가족이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저히 먹고 살 길이 없고, 사는 게 고통일 때 자살하는 것은 정당한 일일까요? 강간당한 여자가 생을 포기하는 것도 정당한 일일까요? 도대체 사는 게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 자살하면 안되나요?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보기 드문 자살 장면입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모사(책사)였습니다. 지혜가 대단하여 그의 말대로 하면 안 되는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아히도벨의 손녀 밧세바를 취하고 그의 남편 우리야를 죽이는 일이 있었고,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자 아히도벨이 압살롬편에 서서 다윗을 대적하게 됩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모략대로 반란 날 곧장 다윗을 추격하여 물리치지 않고 다윗이 심어놓은 첩자 후새의 말을 들어서 다윗에게 유리한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에 아히도벨이 보따리 싸서 집에 돌아와 집을 정리하고 목매 자살하게 됩니다. 혹자는 이러한 아히도벨의 행위가 압살롬에게 인정받지 못해 자살한 것이라 하기도 하고 혹자는 아히도벨이 이미 자기의 모략이 안 받아들여져 다윗이 이길 것을 미리 알고 후환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도 합니다. 아마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자존심 상해 그랬을 수도 있고, 이래저래 살 길이 없음을 깨닫고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여러분, 우리는 아히도벨의 자살 자체를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그런 상황이 되기까지 그 자신의 책임은 없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죄나 실수로 그런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고집을 부리다 스스로 깊은 수렁에 빠져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음을 고려할 때 우리는 그러한 사건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아히도벨이 다윗의 책사였지만 다윗이 자기 손녀와 손녀사위에게 한 짓을 생각하고 다윗에게 앙심을 품고 압살롬의 반란에 동참한 것은 분명 스스로의 꾀와 만용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반란에 실패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으면 하나님께서 그 반란에 동참하는 것을 분명 말리셨을 것입니다. 아히도벨이 평소에 죄를 지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였다면 하나님께 아무런 응답이 없었을 것이고, 또는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인양 속이며 아히도벨에게 그 반란에 동참하라고 했겠지요.

무슨 말입니까? 자살도 일종의 이전 삶의 결과라는 말입니다. 어떤 자살은 하나님의 심판일 수 있다는 말이지요. 평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를 밥먹듯이 하는 자는 생명의 길인 줄 알고 길을 잘못 들어 사망의 길에 들어서는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리시고 말리셨건만, 여러 사람들을 통해 그 길로 가지 말라고 수십 번 말했건만 듣지 않고 허황된 꿈을 좇다 사망의 길에 들어서는 수가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는 길을 가놓고 막상 불순종의 열매를 먹게 되는 순간 아무리 하나님께 기도 드려봤자 아무 응답이 없을 것입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어려움에 처해 기도를 드렸으나 철저히 침묵하셨습니다.

여러분! 길이 아니면 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리석어 무심결에 잘못된 길을 가려 하면 반드시 여러 경로를 통해 말리십니다. 그 때 순종하십시오. 아무리 그 길로 가야 할 마땅한 이유가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금하시면 가지 마십시오. 아히도벨이 다윗에게 앙갚음할 마땅한 이유가 있었으나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히도벨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그 반란에 동참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아히도벨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산 자라면 마땅히 하나님께서 아히도벨에게 경고를 하셨겠지요.

그런데 여러분, 문제는 내 자신에게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을 때입니다. 또한 눈앞에 어떤 장애물이 보이지 않을 때가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병들어 있거나 돈이 한푼도 없거나 도와줄 사람이 없을 때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다 갖춰진 상태에서 어떠한 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말리셔도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때가 사실은 가장 위험한 상황입니다. 아히도벨은 머리가 좋아서 머리만 잘 쓰면 되는 일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본 자입니다. 그러면 안되지요.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12:15).”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라.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어 평안하리라. (잠1:24-33)” 성경은 어리석게 고집을 부려 일을 저질러 놓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도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혹시 자살하고 싶으십니까? 그런 생각은 일단 접어두시고 그 지경까지 오게 된 당신의 발자취를 한 번 살펴보십시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자살을 하게 되는 자들에게는 특히 기독교인일 경우 과거에 심각한 불순종이 있었고, 세상의 길로 갔으며,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일도 저지르고 많은 것을 잃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자포자기로 자살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돈 없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게 된 상태에서 자살하는 기독교인은 거의 없거든요. 죽음으로써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죄된 마음으로 자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마귀는 결국 죽이고 멸망시키는 짓을 하므로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마귀가 허영심을 부추겨 돈을 미끼삼아 거룩한 성전인 기독교인들의 몸을 죄의 도구로 사용하게 하여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짓밟고 자살하게 만드는구나!

그러므로 그런 일들이 닥치기 전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십시오. 무엇보다 건전치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하지 마십시오. 특히 불법적 성행위를 통해 몸을 더럽히지 마시오. 남녀 불문하고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키고 결혼 후에도 바람피우지 마시오! 더러운 죄 안 지으면 자살할 일 별로 없을 겁니다. 가룟 유다나 아히도벨은 가서는 안 되는 길을 가다가 자살로 생을 마쳤습니다. 우리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면 자살로 생을 마칠 이유가 없습니다. “내(예수님)가 온 것은 양(여러분)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병이 들었거나 가난에 힘이 겨워도 자살하면 안됩니다. 강간당했다고 자살하면 안됩니다. 죽은 자들도 살리신 예수께서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 못하실 것 같습니까? 불치병에 걸렸더라도 자연사하는 게 더 나은 방법입니다. 물론 무리하게 생명유지 장치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생명유지 장치가 방해하면 안됩니다. 불치병에 걸려도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생명을 누리다 가는 게 더 겸손하고도 은혜로운 모습입니다. 정말 가난해서 죽고 싶다는 분이 계십니까? 기독교인이 아니시면 기독교의 하나님께 나아오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방법 중에 삶의 고통도 있습니다. 기독교인인데도 가난에 시달리면 혹시 재물에 관해 아니면 다른 일로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시고, 그런 사실이 있다면 진심으로 회개하시고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하십시오. 정직하게 하나님을 섬겼는데도 정말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가난하다면 쓸데없는 생각 마시고 그냥 사세요! 또한 강간범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죄인들의 죄를 깨끗이 씻으실 수 있으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강간당해 몸이 더럽혀졌다고 자살하면 안됩니다. 옛날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습격받아 강간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과 영혼과 마음과 양심과 기억을 다시금 깨끗하게 회복시키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때론 먹고 살만한데도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독교인들 중에 이런 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대개 마음에 썩은 사상을 가득 담고 있는 자들입니다. 무신론자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진선미의 근원이시고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기를 거부하고 기독교의 하나님을 비하하는 언행을 자주 하는 자들이 이런 무의미 정신병에 걸려 자살로 생을 마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허락하신 많은 복들을 무의미하게 즐기고 나서 더 이상 돈 가지고 즐길 게 없을 때 갑자기 자기의 삶이 돈 가진 동물처럼 느껴져 더 이상 사는 것에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해 자살하는 거지요. 또 그런 자들이 늙었을 때 노인의 삶 자체에 혐오를 느껴 자살할 수도 있겠네요. 한 마디로 배부른 정신병자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무의미한 삶은 없습니다. 우리는 귀중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목숨을 거셨습니다. “죽도록 너를 사랑해!” 이 말이 바로 예수께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하신 사랑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그분을 위해 살고 죽어도 그분을 위해 죽습니다. 이런 기독교인들에게 ‘자살’은 딴 나라 이야기입니다. 혹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힘들어 하시는 분 계십니까? 기독교로 오십시오. 그 문제가 즉시 해결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시고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십니다. 그런데 ‘자살’은 절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피할 길이 아닙니다. 타인의 도움으로 죽는 것도 절대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고 복을 내리셨습니다. 동물들이 자살하는 것 봤습니까? 없지요. 세상에는 굶어죽는 동물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자살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동물들도 저렇게 악착같이 사는데 고귀한 인간이 제 맘대로 생명을 끊으면 됩니까? 이래저래 생각해 봐도 자살의 뿌리는 ‘죄’와 ‘불신앙’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면 누구나 자살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서로 격려하는 삶을 삽시다. 결국 사람이 힘드니까 자살하려는 겁니다. 남을 힘들게 만들면 안됩니다. 회사 사장은 함부로 직원을 해고하지 맙시다. 장사하는 자들은 함부로 거래처를 끊지 맙시다. 함부로 남을 모함하여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지 맙시다. 부당하게 남을 직장에서 몰아내는 것은 살인과도 같습니다. 남편의 실직 기간이 좀 길어지면 더욱 더 남편을 공경하고 믿는 모습을 보입시다. 힘들면 짐을 나눠집시다. 남편 실직했다고 이혼하자는 여자는 마귀여편네입니다. 제발 남의 자존심을 박박 긁는 말 하지 맙시다. 타인에게 모욕을 당해 홧김에 자살하는 자들 많습니다. 여러분께서 타인과 타인 가족의 생명을 귀히 여겨 힘든 중에도 그들에게 살길을 마련해 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갑절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냉수 한 그릇도 잊지 않고 좋은 것으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때론 친척들이 참 비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지 마세요. 도울 수 있으면 도와주세요. 집안 사람들 다 모였을 때 돈 많다고 자랑만 늘어놓지 말고! 이참에 돈 좀 있는 분들은 힘들게 사는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푸세요. 그게 좋은 겁니다. 돈 많다고 자랑만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항상 여러분들을 생명의 길, 바른 길로 이끄셔서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누리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