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30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행함 English
말씀: 약2:14-26
>>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사람들은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타인을 오해하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카톨릭은 믿음을 경시하지 않았고 개신교는 행함을 경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개신교는 카톨릭이 믿음을 전혀 고려치 않은 율법주의 종교라고 비방했고, 카톨릭은 개신교의 믿음으로만 구원이라는 교리를 경박한 종교사상이라 폄하하였습니다. 카톨릭은 신자들의 믿음을 전제한 후에 그 믿음이 사실인지를 증명하는 차원에서 행함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행함이 약간 변질되어 너무 율법주의적으로 흘렀습니다. 개신교에서 보면 그러한 태도는 복음의 핵심을 무시한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개신교 신학자들은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어지는 것이되 그 믿음은 행위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양측 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만을 섬기며 그분의 말씀 순종하여 살고 이웃과 관련하여 착하게 사는 것에 대해 전혀 문제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차원에서의 행함은 양측이 똑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작 큰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죄용서 선언 다음의 행함이었습니다. 그 행함은 벌칙 비슷한 거였습니다. 카톨릭은 신자의 죄용서를 선언한 다음에 일정량의 행위를 부과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강제적이라는 데에 있고, 그러한 개인에게 부과된 행위는 믿음이 좋은 타인의 공로로 면제가 가능하다는 교리에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볼 때 죄용서에 따르는 그러한 행위부과가 왜곡된 구원론이고 비성경적이라는 것입니다. 개신교가 보기에 카톨릭의 그러한 죄용서와 관련된 행함 교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고 성인숭배로 이끄는 독소조항이었습니다. 그런데 카톨릭에서 개신교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에 불만이 많은데, 개신교가 말하는 그 믿음은 행위로 뒷받침된 믿음을 강조하고 있음을 간과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일부 개신교인들이 잘못된 믿음교리를 갖고 입으로만 믿음을 고백하고 행위는 전혀 신경을 안썼기 때문에 그런 비판이 나왔는데, 그러한 가짜 개신교 신자들은 개신교측에서도 똑같이 비난하고 있습니다. 다만 죄용서와 관련하여 개신교는 카톨릭이 하는 행위부과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죄용서와 관련한 이 개신교의 입장이 더 성경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죄용서를 받은 자가 자원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이라든가 봉사를 하면 더 좋은 일이지요. 강제조항이 아니라면 그보다 더 건전하고 교회에게 유익한 행위가 어디 있습니까?
바울도 믿음과 행위를 다 강조했고, 아고보서 기자도 믿음과 행위를 다 강조했고, 카톨릭에서도 믿음과 행위를 다 강조했고, 개신교에서도 믿음과 행위를 다 강조했습니다. 단 이때의 행위는 카톨릭이 신자들의 죄사함 때 부과하는 종교 행위는 제외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 행위 둘 다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가짜믿음을 인정하실만큼 어리석은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진짜 태풍이 임하면 위협적인 바람과 비가 내립니다. 태풍이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폭탄은 굉음을 내고 주위의 것들을 파괴시킵니다.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믿음은 반드시 행위를 동반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믿음만능주의자에게 야고보서 기자는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보여줘봐. 난 행함으로 내게 있는 믿음을 네게 보여주겠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스스로를 속이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이 온전케 되었다”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명하셨을 때 군소리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결국 그가 독자를 잡아죽이려 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시고 말리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야고보서 기자는 기생 라합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고 그녀가 자신의 믿음을 근거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행동을 했음을 들어 역시 믿음과 행위를 동시에 강조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여러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예수님의 공로로 죄용서함을 받아 영생을 얻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여러분은 절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에 대한 행위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나타나야 여러분은 비로소 구원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행위가 없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그 행위가 무엇입니까?
먼저 여러분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외에 다른 헛된 우상을 다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가 돌로 된 부처에게 가서 절하고, 이상하게 생긴 바위에게 절을 하고, 동네 가운데에 있는 큰 나무에게 절한다면 그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가짜입니다. 그가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하나님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낸 잡신일 뿐입니다. 잡신을 믿고 어떻게 유일무이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기독교인 딱지를 붙이고 다니면서도 세계의 여러 종교의 신들을 인격적으로 존경하는 자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런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행위를 하는 자들은 가짜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고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겁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잡귀신들이 무섭다며 기를 못펴고 사는 자들은 가짜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가 천지를 지으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진짜로 믿을 때 잡귀신 따위에게 벌벌 떠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그가 정말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런 잡귀신을 물리치려 비싼 부적을 갖고 다니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반드시 성경에 기록된 그분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물론 연약한 인간인지라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고, 범죄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는 마음의 근본태도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능한 한 그분의 계명을 지키려 애씁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태도가 없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닙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우리는 그분께서 의로운 분이시고, 우리는 죄인들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도 죄가 없다고 주장하면 여러분의 모든 행위를 낱낱이 다 기억하시고 계신 하나님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의 행위들을 다 살피신 다음 그들이 다 죄인임을 판결하셨습니다. 그 하나님 앞에 ‘나는 죄를 진 적이 없는 의인입니다’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최후의 심판주이신 그분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고, 이는 그의 믿음이 가짜믿음이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분의 전지전능을 믿고,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으신 그분의 권세를 믿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죄를 지었음에도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실제로 믿는 자가 있다면 이 자는 영원히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이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믿고 있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까요? 어림도 없지요.
여러분이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로 믿어야 영생을 얻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부활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독생자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우리가 영생을 얻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을 때 여러분의 행동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그러한 믿음이 여러분의 마음에 있을 때 여러분은 스스로를 예수님의 종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세상 무엇보다도 심지어 여러분 자신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정말 마음속 깊이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행위가 없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가짜 믿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함과 관련하여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 믿는 자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특별히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 중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무시하지 않고 예수님을 섬기듯 섬기고 돌보아 주는 자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사랑해야 하겠지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고 마귀가 주는 생각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양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갑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쟁기를 들고 논밭을 가는 자와 같습니다. 그는 한눈팔거나 곁눈질하거나 뒤돌아보면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정해주신 삶의 목표만 주시하고 가야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자들은 자신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감사함으로 집니다. 세상은 마귀에게 속해 있으므로 예수님의 양들은 그들에게 핍박을 당할 수 있습니다. 무한경쟁의 세상에서 예수님의 계명대로 살려면 많은 손실과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런 십자가를 기쁘게 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구세주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정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확신을 갖고 전도하는 자는 정말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자입니다. 영이 살아있는 신자만이 전도하여 생명을 낳습니다. 전도하는 자 안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하여 이웃을 구원시킨 자는 100% 예수님을 믿는 자입니다. 이 자의 믿음은 진짜 믿음입니다. 이런 행위가 나타나는 자가 진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소유한 자입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받았으니 자신의 죄사함을 믿는 자는 이제 죄를 싫어하고 의를 추구하게 됩니다. 죄를 사랑하는 자는 마귀를 사랑하는 자이고 이런 자가 아무리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그 말을 믿어줄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생의 약속을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여러분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자들이 예수님의 최후의 심판석에 서야 함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은 자들, 그 믿음이 위에 열거된 행위들을 통해 입증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이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게 됨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영생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여러분은 어떤 행동을 취합니까? 여러분은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당연히 감사해야 하겠지만, 여러분이 영생을 얻었다는 믿음을 가지면 모든 삶의 궂은 일에 대해 전혀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세상적 관점에서 볼 때 큰 불행이 닥친 경우, 여러분이 이 일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생은 이미 손에 쥐어졌다고 봐도 좋습니다. 여러분에게 영생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여러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이러한 행위가 나타날 때 여러분은 검증된 믿음을 소유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진짜믿음입니다.
위와 같은 하나님의 본성과 그분의 행하신 일들과 그분의 약속들에 대한 우리의 거짓되지 않은 반응이 바로 우리의 믿음을 확증시키는 행위이고, 이러한 행위가 우리의 구원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들, 예를 들면 죄 용서받기 위해 교회에 1000만원 헌금하는 일, 죄용서 받기 위해 사회봉사 1000시간 하는 일, 죄용서 받기 위해 7일 금식하는 일 등은 그야말로 헛다리를 짚는 짓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죄용서의 기도를 드리면 즉시 다 거저 용서받습니다. 그 죄용서가 감사해서 하나님과 이웃에게 이전보다 더 큰 사랑을 행하면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지요. 우리의 모든 선행(善行)은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한 수단이 절대 못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짜임을 증명하기 위한 위에 열거한 행위들 이외의 것들을 통해 우리의 의로움을 증명하려는 것은 웃기는 일입니다. 용서받은 죄인이 뭔 자기의 의를 주장하겠다는 겁니까? 이는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겁니다. 우리의 모든 선행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살 때 자연히 맺혀지는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열매들을 가지고 내 것인 양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자랑하면 안되지요. 여러분, 좋은 일 많이 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자기자랑은 하지 마십시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행위가 여러분의 믿음을 증명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선한 행위를 통하여 여러분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큰 영광을 받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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