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시23편) :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stevision 2012. 11. 26. 17:25

 

(2007년 6월 2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English
말씀: 시23편

  

 

 >>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

다윗의 시(詩)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이지요. 이 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선미의 근원이시거든요. 다윗이 자기 양을 사랑하는 참된 목자였기에 그는 자기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선하신 목자라고 합니다. 다윗이 양을 돌보았듯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정성스레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다윗의 시에서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목자로만 나오시는 게 아닙니다. 다윗은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아름답게 시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본 하나님은 ‘선한 목자’이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1, 2절).” 선한 목자는 양들에게 좋은 풀과 좋은 물을 먹입니다. 어미가 아이에게 귀하고 좋고 깨끗한 것만 먹이고 싶듯이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좋은 것들로 먹이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는 말이 ‘나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그분께서 주시는 모든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죽는소리하며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이가 단 것을 먹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우리 아기 예쁘게도 잘 먹네”라고 기뻐합니다. 아이가 쓴나물도 맛있게 먹으면 “우리 아기 다 컸네, 이제 쓴나물도 잘 먹네”라며 훨씬 더 기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입에 넣어주시는 단 것, 쓴 것 다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단 것과 쓴 것을 먹이시되 더러운 것은 먹이지 않으십니다. 무엇으로 여러분이 어린 아이에서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다고 증명합니까? 단 것만 찾고, 만화책만 찾고, 장난감이나 인형만 찾던 생활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음식에서 소금이 빠지면 맛이 없듯, 커피에서 쓴맛이 빠지면 맛이 없듯, 인생에서 짠맛, 쓴맛이 다 빠지면 그게 무슨 맛입니까?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인정하실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다 나를 위한 것임을 인정하고 ‘내가 부족함이 없다’라고 입으로 시인하게 됩니다.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그분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 것을 먹고 나면 입의 갈증이 심화되지만 쓴 것을 먹고 나면 갈증이 사라집니다. 여러분, 석류를 드셔보셨지요? 석류의 작은 알맹이들 사이를 채우고 있는 부분은 쓴맛을 많이 냅니다. 그 부분과 알맹이를 함께 입에 넣어 먹을 때 제대로 된 석류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석류를 먹고나면 입과 속이 다 시원함을 느끼게 됩니다. 거기에 신맛과 쓴맛이 있어서 그것이 단맛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박보다 석류가 갈증을 더 잘 해소시켜줍니다. 인생의 갈증도 쓴맛이 있어야 해소됩니다. 놀라운 사실은 순수한 물은 쓴맛을 내고 있다는 겁니다. 못믿으시겠다면 한 번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며 맹물을 드셔보십시오. 깨끗한 물도 차가울수록 더 쓴맛이 납니다. 세상에서 제일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시키는 물이 깨끗하고도 차가운 물이 아닙니까? 단 것 만으로 절대로 풍요로운 인생을 맛볼 수 없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본 하나님은 ‘선한 선생님’이셨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義)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3절).” 선한 선생은 제자들에게 바른 길을 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시때때로 다윗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다윗이 그 길로 갔을 때 그는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선한 선생님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즐겨하면 여러분은 의인이 되십니다. 그런데 악한 길을 제시하는 선생은 제자들의 영혼을 죽이는 자입니다. 이와 달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로운 길을 제시하시어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을 소생케 하십니다. 여러분, 의롭게 살고 싶으십니까? 의로운 하나님의 법을 지키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다윗이 본 하나님은 ‘믿음직한 인생의 동반자’이셨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4절).” 믿음직한 인생의 동반자의 여부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판가름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의 손에서 다윗을 구하셨습니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손을 놓고 떠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모든 일에 ‘부족함’도 못 느꼈지만 ‘두려움’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맹수가 달려들 때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그것을 물리치듯, 다윗에게 달려드는 모든 원수들은 하나님의 지팡이 맛을 보고 다 달아나버렸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여러분의 인생의 동반자로 모셔들이기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두려워말고 평안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과 동행하실 때 악한 자가 여러분을 만지지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동반자가 되어주실 때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가 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더 어둡고 깊을수록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는 더 가까워집니다. 그러한 때에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시는 고귀한 집주인이셨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5절).” 귀한 분의 집에 초대받아 가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왕이 평민을 초대하여 푸짐한 상을 차려놓고 같은 상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면 그 평민에게는 큰 영광이 됩니다. 5절 말씀은 고귀하신 하나님께서 다윗을 당신의 집에 초대하시어 어떻게 환대하시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집주인이시고 다윗은 손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원수들이 다 알도록 하는 가운데(내 원수의 목전(눈앞)에서) 다윗을 귀한 손님으로 집에 초대하십니다. 다윗의 원수들은 다윗이 귀한 분의 집에 초대되어 가는 것을 눈뜨고 지켜만 보며 더욱 시기하고 이를 갈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의로운 다윗을 핍박했던 자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밖에 나서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원수들은 다윗이 얼마나 극진히 대접받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귀한 손님으로 대해주셨습니다. 그 증거는? 하나님께서는 초대되어 온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셨습니다.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렸을 때 이는 그녀가 예수님을 마음으로 존경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손님으로 초대되었을 때 종들이 그의 발을 씻겼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귀한 손님의 모습을 갖추게 하셨습니다. 요즘은 무스로 머리 모양을 잡지만 옛날에는 기름으로 했습니다. 이제 잔치에 참여할 모습을 갖춘 다윗이 진수성찬으로 가득 찬 상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귀한 손님 다윗에게 잔을 들라 하시더니, 넘치지 않도록 맛좋은 술을 적당한 양을 따르실 수도 있었지만, 굳이 잔이 넘쳐흐르도록 술을 따르셨습니다. 다윗은 그 귀한 술을 전혀 아낌없이 따르시는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의 진심이 뭔지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저(Z^_stevision)는 술을 입에 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그 무엇을 다 다윗에게 주시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으시다는 것을 그렇게 넘치는 잔으로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이 5절 말씀은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 자기가 누리는 부귀영화를 보며 그것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극진한 대접이라 고백하며 쓴 것입니다. 다윗은 기름부음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윗의 종이 되어 극진히 다윗을 섬겼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다윗에게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이 내리고 또 내려 넘쳐흘러 너무 많아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께 복을 받아 누리는 때에 옛날에 다윗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원수들은 이미 죽어 있거나 천민 중의 천민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궁에서 호강하며 사는 다윗을 보며 침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선한 선생님으로, 신실한 인생의 동반자로 인정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집에 여러분을 귀한 손님으로 초대하시어 극진히 대접까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준비하신 천국 잔치에 믿는 자들을 초대하십니다. 믿는 자들의 모습이 초라하여 그분께서는 당신의 독생자의 피로 그들의 모든 더러운 죄를 다 씻으시고, 성령을 부어주시어 그들을 거룩한 자들로 삼아주시고, 예수님의 의(義)를 의복으로 그들에게 입혀주십니다. 모든 것을 다 소유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나눠주실 대상을 찾지 못하신다면 얼마나 안타까우시겠습니까? 여러분께서 다윗과 같은 자가 되어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경외할 때 그분께서도 여러분을 귀히 보십니다.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버지가 되어주셨습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6절).” 다윗이 하나님께 초대받아 가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너무나도 좋고 영광스런 이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살면 안될까?’ 선함과 인자함은 아버지의 성품입니다. 다윗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육신의 아버지보다 훨씬 더 선하시고 인자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안 이후 조금만 신경써서 그분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복으로 채워주심을 그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다윗은 하나님을 대하며 전혀 손해본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참 신실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조금 더 욕심을 냅니다. ‘이참에 아예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만들어버리자!’ 다윗이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저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살겠습니다.” 이 말은 곧 다윗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분의 집에서 영원히 살겠다는 겁니다. 시편 23편이 이 6절에서 마친 것을 보면 다윗의 이 요구를 하나님께서 기뻐 승인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하나님께서 ‘요 건방지고 뻔뻔스런 녀석 뭐가 어째?’라고 퇴짜 놓으셨다면 6절의 다윗의 고백은 나와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다윗을 아들 삼아 영원히 그분의 집에서 함께 사시는 것을 기뻐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아들이 아니면 어떻게 영원히 한 집에서 같이 삽니까? 여러분, 욕심을 좀 더 내십시오. 하나님을 여러분의 아버지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영원토록 풍성한 복을 누리며 그분의 집에서 함께 사시게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기꺼이 여러분에게 영원히 선하시고 영원히 인자하신 아버지가 되어주십니다. 그 좋은 천국이 여러분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께서 예수님을 마음에 주님으로 모셔들여 그분을 극진히 대접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바리새인 시몬과 같은 자들도 있습니다(눅7:36-50). 그는 예수님을 집에 초대해 놓고 발씻을 물도 안 드리고, 머리에 향유보다 못한 감람유도 부어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초대한 손님을 고의로 모욕을 주겠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박대 당하시는 게 안쓰러웠던지 그 동네에서 죄인취급 당했던 여인이 자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소중히 아끼던 향유를 그분께 부어드렸습니다. 아들(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성부 하나님)를 영접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마음에 초대해 놓고 그분을 서운하게 대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그분을 여러분의 주인으로 모시십시오. 하나님의 모든 복은 여러분께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때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가 시편 23편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3절)” 이 모든 일들을 행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계셔야 우리의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사기꾼 아버지를 둔 아들은 정말 불행한 자입니다. 남 등쳐먹는 남편을 둔 아내는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습니다. 부모가 영광 중에 있고, 남편이 영광 중에 있고, 아내가 영광 중에 있어야 그들의 가족이 기를 펴고 살게 됩니다. 간혹 보면 온갖 더러운 짓 다 하는 사이비 종교 교주들이 있는데, 그들을 교주로 모시고 사는 자들은 얼마나 부끄러운 자들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우리들을 위하여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지키십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시고, 공의를 베푸시고, 선하신 목자가 되어주시고, 선하신 선생님이 되어주시고, 선하시고 인자하신 아버지가 되어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유지하시기 위해 우리가 죄를 지으면 벌을 내리시되 그 이후에 은혜를 더 베푸십니다. 자식의 죄를 무작정 눈감아주는 부모는 의롭지 못한 부모이고 이는 자식에게도 치욕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적절히 징계하셔야 우리에게 더 유익입니다.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의로우신 분일 때 우리에게도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우리의 원수들을 쫓아내는 도구이지만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수단도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시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의로운 삶을 살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사시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택(동토마햇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