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삼상17:41-54) : 목숨을 걸고

stevision 2012. 11. 27. 11:41

 

(2007년 8월 4일 동아 시사 발언대에 올린 글)

 

제목: 목숨을 걸고                                           English
말씀: 삼상17:41-54

  

 

>> ... 42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3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 54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됩니다. 러시아 사람들의 게임 중에 권총 총알을 하나 넣고 그 총알 넣는 것을 몇바퀴 돌린 다음에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있습니다. 총알이 6개 들어가는 것이면 육분의 일이라는 확률로 즉사하는 것이지요. 아주 미련하고 불경스런 게임입니다. 이런 사악한 게임 즐기고 살아남은 인간들 나중에 최후 심판 때 살인강도 정도의 벌을 받을 것입니다. 저런 쓸데없는 용기 자랑하라고 그 어미가 그렇게 힘들여 낳았단 말입니까? 남녀간의 난잡한 성교도 생명을 경시하는 짓이므로 큰 죄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생기게 될 아이를 낙태시켜 죽이겠다는 심보를 갖고 그것을 즐기므로 살인죄와 같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동성애 정신병자들도 생명을 낳는 거룩한 성기를 가지고 더러운 짓거리를 하므로 이 정신병자들도 반드시 지옥에 갈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자랑이 바로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수단이 바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경시하는 자들, 특히 인격을 갖춘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자들에게 크게 노하시고 반드시 그 책임을 지엄하게 물으십니다.

생명은 그것을 소유한 자에게 무한대의 가치를 지닙니다. 그 누가 자신의 생명을 다른 것과 바꿀 수 있습니까? 아무리 금덩어리가 좋다한들 자신의 생명을 잃고 금덩어리를 가질 수 있습니까? 생명을 잃으면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기독교가 위대한 것은 영생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바쳐, 자신의 생명을 걸고 어떤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게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영생을 발견했기 때문에 우리는 참으로 이 땅에서의 우리의 생명을 가지고 의미있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영생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 세상은 지독한 이기주의와 한탕주의와 무자비한 약육강식의 짐승같은 인간들의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 말씀은 기독교인이라면 다들 잘 알고 있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정말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의 마음입니다. 골리앗은 블레셋 군대의 대표였습니다. 계급이 높은 게 아니라 덩치가 무지하게 크고 힘이 세서 블레셋 측에서 그를 대표로 내보내 이스라엘 대표와 겨뤄 기선을 제압하게 했던 것입니다. 키가 2.9m 였던 거인이 완전무장을 하고 나와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너희들 중에 누구 하나 나와서 나와 대표로 겨뤄보자. 우리가 섬기는 신이 더 센가 너희들이 섬기는 여호와 신이 더 센가 한번 우리들을 통해 겨뤄보게 하자”라고 외치니 이스라엘에서 누가 감히 나서질 못했습니다. 다윗이 원래는 군인으로 그곳에 있던 게 아니라 아버지 심부름으로 군인인 형들의 형편을 살피러 그곳에 있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이 저렇게 기세등등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보고 분개했습니다. 그 많은 이스라엘 정규군의 군인들 중에 골리앗의 말을 듣고 분개하여 그를 상대해 무찌르겠다고 마음을 먹은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군인도 아닌 다윗이 골리앗의 말을 듣고 분개하여 그와 대결하겠다고 나섭니다. 왜 그랬나요?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세상적 기준으로 볼 때 다윗보다 하나님께 복을 더 많이 받은 자들이 거기에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했던 자는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골리앗에게 덤비겠다고 나선 것이지요. 이 때 바로 결정적으로 다윗이 하나님의 눈에 들게 됩니다. ‘다윗 네가 모든 이스라엘인들 중에 나를 가장 사랑했으니 내가 모든 이스라엘인들 중에 너를 가장 사랑하여 가장 큰 복을 내리겠다.’ 여러분, 인간도 하나님께서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줍니다.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사랑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자기 생명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양측에서 대표로 한 사람씩 나와 겨루는 것은 한쪽이 반드시 다른 쪽을 죽이는 게임입니다. 군인도 아닌 소년 다윗은 골리앗이라는 군인을 죽이지 못하면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승산이 없어 보이는 게임입니다. 전에 아무리 다윗이 사자를 죽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짐승입니다. 지금의 상대는 무기를 가진, 꾀를 부릴 줄 아는 군인입니다. 팔과 다리의 근육의 힘에 의해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게임입니다.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골리앗과 싸워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까딱 잘못하면 무참히 패해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고 자신의 생명은 물론 그 즉시 잃게 되고 집안 망신까지 당하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기꺼이 그런 치욕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다윗의 승리를 준비하셨습니다. 여러분, 아무나 나선다고 다 승리를 합니까? 확신이 있다고 누구나 다 성공하고 승리를 합니까? 그게 아니지요. 하나님 앞에 자신의 귀중한 것을 희생할 각오를 한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승리와 성공을 예비하십니다. 다윗의 믿음이 무한대로 컸다면 역설적으로 그만큼 자신의 생명을 걸겠다는 당찬 각오는 없겠지요. 큰 믿음이면 죽을 염려 따위는 아예 하지 않겠지요. 그런데 세상에는 믿음뿐만 아니라 실패했을 경우의 손해도 감수하겠다는 헌신된 마음이 필요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즉 내가 혹시 실패했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이 실패를 통해서도 영광받으시고 나의 이 손해를 사후의 세계에서라도 복구해 주실 것이라는 확장된 믿음이 있는 자가 진짜 믿음을 가진 자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골리앗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자신의 젊은 생명을 걸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다윗은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다윗아, 네가 나를 위해 너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걸었구나. 내가 너의 생명을 보존하여 장수의 복을 주겠노라. 네가 큰 장수가 되어 전장에 나갈 때마다 내가 너의 생명을 지켜주마. 네 대적들이 너를 죽이러 쫓아다닐 때에도 내가 너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 네 생명을 지켜주겠다. 그리고 혹시 네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을 때 네가 죄를 회개하여 용서를 구할 경우 그 죄를 용서해줄 것이다. 네 목숨을 거두는 대신 다른 죄인들의 목숨을 거두겠다. 아니, 네 죄를 억지로라도 회개시켜 네 죄를 용서해주겠다. 대신 다른 죄인들의 목숨을 네 생명 대신 거두겠다.’

여러분, 누가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까? 말로만? 하나님의 영광을 해치는 자들을 보면 분개할 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자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인들 중에 다윗이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자입니다. 제가 볼 때 그 복은 거저 받은 게 아니라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 받은 복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자신의 힘이 허용하는 최대의 사랑을 하나님께 드린 자가 다윗과 같은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혼신의 힘을 다해 여러분의 역할을 다 하십시오. 다윗의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사실 다윗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힘과 지혜를 주셔서 대적을 능히 무찌르게 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 골리앗이 아무리 거인이고 좋은 무기를 가졌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의지하는 자들을 책임지시고 지키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담대히 외칩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다윗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만들었습니다. 언젠가 다윗이 말을 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누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맛보아 압니까?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 대적을 향해 나아가는 자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맛보며 삽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다윗이 한 말입니다. “내가 젊어서부터 지금 늙을 때까지 쭉 봐왔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그 자손들이 빌어먹는 꼴을 못봤다. 다 살만큼 살더라.”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은 곧 죽을 것 같아도 절대 허무하게 죽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려운 처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과 사랑을 지킨 자를 하나님께서 절대 빌어먹을 처지에 있게 안놔두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자가 젊어 병들었을 때 곧 죽을 것 같아도 기어이 그 병을 이기고 건강하여져서 나중에 위대한 신앙인으로 살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경우가 한둘입니까? 여러분 절대 현재의 재산이나 건강 정도 따위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괄시하지 마십시오! 간혹 보면 변변치 못한 처지에 있기는 하나 믿음이 확실하고 생활 태도가 확실한 젊은이에게 자기 딸 주기를 주저하다 기회를 놓치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자들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고이 길러 마귀 자식에게 상납하실려고요? 자기 딸 좋은 기독교인 청년에게 시집보낼 믿음이면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그 딸자식 학생부나 대학부나 청년부에 소속시켜 예배나 신앙 활동을 빼먹지 말게 해야지요. 개떡같은 신앙생활 방치하겠다는 것은 딸자식 고이 길러 마귀 자식에게 상납하겠다는 맘보입니다. 누가 학력이나 얼굴만 번지르르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답니까? 무슨 고생하려고요? 아무리 자기 딸이라도 냉정하게 주제파악을 해야 합니다. 정신 제대로 박힌 청년이 그런 나일롱 신자를 아내로 맞이할 것 같습니까? 아들이나 딸을 둔 어리석은 학부모 신자들이 교회에 많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너는 교회생활 어떻게 했냐고 물으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 부끄럽지만  고백합니다. 용서하시고 들으십시오. 저는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절대 대학에 갈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대학은 꼭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중고등부 회장 할 애가 없다고 글쎄 고 3이 되는 저를 회장으로 뽑아버리는 거였습니다. 저는 시간을 내서 열심히 전도하고 뛰어 중고등부를 부흥시켜놨습니다. 고3 여름방학 때부터는 주일날 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일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결국 남들이 보면 시시한 대학이긴 했지만 장학금 덕택에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이 당시에 컸다고 하나 저의 믿음도 그에 못지 않게 컸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때의 저의 믿음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학생부 활동한다고 절대 대학시험 점수 떨어지지 않습니다. 제발 꾀지지한 믿음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 3인 제가 학생부 회장을 할 때 교회를 담임하셨던 전도사님께서 얼마나 저를 위해 기도하셨겠습니까? 제가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씀을 들으시고 그분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며 “할렐루야!”를 외치시던지...

그러니까 다윗이 붙잡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하심이었습니다. 그 날 다윗이 순교를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영광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그 날 분위기는 그런 식으로 흘러가면 절대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에게 승리를 달라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순교는 다른 나라에 선교하러 가서 당하거나 악한 정권이 기독교인을 박해할 때 당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은 상황에서 다윗이 장렬하게 순교를 당하는 것은 절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손해보실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위대한 승리를 안겨 주셔야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양측 군대가 다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통쾌한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이 승리로 인해 이스라엘인들은 다윗이 위대한 장수임을 뼛속 깊이 깨닫게 되었고,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의 용기와 능력을 보고 다윗이 살 동안 그를 무서워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생각합니다. ‘다윗이 왕이 안 된다면 대체 누가 왕이 될 수 있다는 거야?’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이스라엘의 적 블레셋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저 다윗이 왕으로 있는 나라에 누가 감히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거야?’ 그 날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용기 백배 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골리앗과 싸웠는데, 그 날 그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참 부러우시지요?

여러분의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윗처럼 하나님께 많은 사랑과 복을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 동토마 햇빛교회 김종택(Z^_stevision) <<